변영봉
卞榮鳳1886. 12. 26 ~ 1952. 11. 15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3)
관련 사건
- · 청주군 북일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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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13) 1886년 12월 26일 충청북도 청주군(淸州郡) 북일면(北一面, 현 청주시 청원구 내수읍) 우산리(牛山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변성서(卞聖西)와 변영봉(卞榮奉)을 사용하였다. 1919년 농업에 종사하다가, 4월 1일 북일면의 횃불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청주군에서는 1919년 3월 2일 서울로부터 독립선언서가 도착한 이래, 3월 7일 우시장(牛市場)의 만세시위를 시작으로 여러 지역에서 만세운동이 전개되고 있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전국적으로 나라의 독립을 위해 만세시위가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이에 공감하여 평소 시국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던 송태현(宋台鉉)·신석범(申錫範)과 협의하여 북일면에서의 만세운동을 결의하였다. 한편, 당시 청주 인근의 여러 지역에서는 많은 주민들이 주로 산 위로 올라가 횃불을 밝히고,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는 횃불만세시위가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야간에 산 위에서 만세운동을 전개하는 횃불만세시위는 일제 군경이 참여자들을 쉽게 식별하지 못하고 출동하기까지 충분한 시간을 확보할 수 있으며, 멀리서도 잘 보이기 때문에 효과를 높이는 동시에 다른 지역으로의 파급력까지 증폭시킬 수 있는 방식이었다. 이러한 장점이 있는 횃불만세시위를 인근 지역과 마찬가지로 북일면의 만세운동 방식으로 결정하였다. 1919년 4월 1일 밤, 송태현·신석범과 함께 마을 주민들을 규합하고, 독립을 위해 다른 지역처럼 만세운동을 함께 하자고 호소하였다. 그러자 만세운동 취지에 공감한 수십 명의 주민들이 동참하기로 결의하였다. 이에 송태현·신석범과 함께 주민들을 이끌고 우산리의 뒷산으로 올라가 모닥불을 피워 횃불을 밝히고, 큰 목소리로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산 위에서 메아리치는 만세 구호 소리와 멀리서도 또렷이 보이는 횃불을 보고, 이에 공감한 인근의 주민들이 대거 횃불만세운동에 동참하였다. 시위대의 규모가 확대되자, 이들을 지휘하여 마을의 뒷산 보다 높은 와우산(臥牛山)으로 이동하였고, 밤 10시경 시위대와 함께 정상으로 올라가 ‘조선독립만세’를 힘껏 외치며 횃불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후 이 일로 일제 경찰에 붙잡혀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5월 13일 공주지방법원 청주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그 해 6월 16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곧바로 상고하였으나, 같은 해 7월 26일 고등법원에서 최종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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