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지영
宋志英1916. 12. 13 ~ 1989. 4. 24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한족동맹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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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0) 1916년 12월 13일 평안북도 박천군(博川郡) 남면(南面) 동하동(東下洞)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여산(礪山), 호는 우인(雨人)이다. 이명으로 한자를 달리하는 송지영(宋志泳)이 있다. 1928년 가족과 함께 경상북도 영주군(榮州郡) 풍기면(豊基面)으로 이사하였다. 부친의 뜻에 따라 정규 학교를 다니지 않고 제자백가(諸子百家)를 읽으면서 자습하였다. 1935년 7월 동아일보사 맹중리(孟中里) 본국 기자로 임명되었다. 1936년 동아일보 풍기지국 기자가 되었다. 1937년 견습기자로 동아일보사에 입사하여 1939년 11월 동아일보사 신징(新京)지국 총무로 임명되어 만주국으로 건너가 만주특파원으로 활동하였다. 1940년 8월 동아일보가 폐간되자 만선일보(滿鮮日報)에 취업했다가 상하이(上海)로 가서 상하이시보(上海時報) 기자로 활동하였다. 대학교육의 필요성을 느끼고 1940년 난징 중앙대학(中央大學)에서 중국문학을 전공하였다. 중앙대학 3학년 때 충칭(重慶) 대한민국 임시정부 특파원 김병호(金炳豪)와 연결되었다. 김병호를 통해 난징대학(南京大學)의 한국인 학생 이일범(李一凡)·조일문(趙一文) 등과 만났다. 중국 국민정부의 특파원인 능지남(凌志男)·상교(上校)와 만나 한족동맹(韓族同盟)이라는 비밀결사대를 조직하였다. 임무는 애국청년 규합, 일본군 동태 탐사, 초모 인원 후송 공작 등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난징 지구 지하공작 상황을 이범석(李範奭) 광복군 제2지대장에게 보고하였다. 초모한 청년들은 중앙대학 동창 중국인 왕하이칭(王海靑)·소건국(蘇建國)이 책임지고 충칭(重慶)과 시안(西安) 및 제3전구 지역으로 호송함으로써 한국광복군의 역량 강화에 크게 기여하였다. 난징에서 지하공작을 펴 오던 김병호가 1943년 6월 밀정의 밀고로 체포되면서 조일문·이정선(李正善) 등과 함께 상하이 일본 영사관 경찰에게 붙잡혔고, 대대적인 검거선풍이 일면서 난징대학 학생들도 위기에 처하였다. 모진 고문에 시달리면서 상하이 영사관 형무소에서 미결수로 1년 가까이 갇혀 지냈다. 1944년 8월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고 일본 나가사키(長崎) 형무소로 이감되어 옥고를 겪었다. 1945년 10월 석방되어 귀국하였다. 1946~1947년 서울대와 중앙대 강사, 1946년 한성일보 편집부장, 1948년 국제신보 주필 겸 편집부장, 1949년 태양신문 주필 겸 편집부장, 1955년 희망사 주간, 1959년 조선일보 논설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82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은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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