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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효인

白孝仁

1856. 5. 27 ~ 1942. 9.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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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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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장성(長城)의병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남도 장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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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기삼연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56년 5월 27일 전라남도 장성군(長城郡) 황룡면(黃龍面) 금호리(金狐里)에서 태어났다. 1907년 기삼연(奇參衍)의 호남창의회맹소(湖南倡義會盟所)에서 총독(總督)으로 활동하였다. 기삼연은 전남 장성에서 1895년 기우만(奇宇萬)과 함께 을미의병을 일으켰으며, 나주(羅州)로 나아가 많은 의병을 소집하였다. 그러나 조선 정부의 선유(宣諭)에 의병을 해산시켰다. 대한제국 군대가 강제 해산된 이후에는 1907년 9월 수록산(隨錄山) 석수승암(石手僧庵)에서 회맹하였고, 호남창의회맹소 대장에 추대되었다. 이때 호남창의회맹소의 총독으로 전북 고창(高敞) 문수사(文殊寺)에서 교전하였으며, 1907년 12월에 의병 100명과 함께 영광(靈光) 법성포(法聖浦)에서 세곡을 탈취하여 군량을 확보하였다. 이외에도 장성(長城)·영광(靈光)·정읍(井邑)·부안(扶安) 등 전북 지역에서 전과를 올렸다. 그러던 중 일본군에 붙잡힌 기삼연이 1908년 (음)1월 2일 광주(光州) 서천교(西川橋) 백사장에서 총살당하자, 이후 호남 지역의 의병 활동은 크게 위축되었다. 이때 한계를 느끼고 고향에 은신하였으나, 결국 일제 경찰에게 붙잡혀 모진 고문을 받으며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정다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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