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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남조

邊南朝

1889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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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변남조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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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북 온성(穩城)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함경북도 온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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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대한북로독군부

포상 정보

  • · 애족장(2012)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2) 함경북도 온성군(穩城郡) 온성면(穩城面) 서흥동(西興洞) 출신이다. 1921년 당시 판결문에 32세였던 것으로 보아 1889년생으로 추정된다. 대한북로독군부(大韓北路督軍府) 동부 경찰과장(警察課長)으로 군자금 모집 활동을 하였다. 1920년 (음)7월 말에서 8월 초순 동료 오기준(吳基準)으로부터 독군부로 짚신을 보내달라는 요청을 받고, 자금을 모아 당시 1백 20원으로 짚신 3백 켤레를 사서 독군부에 보냈다. 이때 동료 안태현(安泰現)은 우동규(禹東奎)의 명령을 받고 온성면 동화동(東和洞) 구영한(具永漢) 집에서 회의를 하여 동부의 장이었던 최진동(崔振東) 명의의 「선유문(宣諭文)」을 관할 관청의 허가를 받지 않고 배포하였다. 「선유문」은 “조선을 독립시키기 위하여 독립군은 계속 군인을 모집하여 교육을 실시하여 그 세력을 마치 높은 산으로부터 굴러 떨어지는 바위들과 같다. 조선 동포는 일치 협력하여 일본을 배척하고 조선 독립을 꾀하여 문명 제국과 함께 세계 무대에서 활약할 것을 바란다”라는 내용이었다. 이후 이 글을 안태현이 온성 군청으로부터 출판·원지 등을 가져다가 전도영(全道榮)에게 나누어 주었고, 「선유문」을 원지에 긁어 오기준에게 다시 준 다음, 이서오(李瑞五)·우동규·오범길(吳範吉)과 등사판으로 해당 「선유문」 20장을 인쇄하여 온성군 영와면장(永瓦面長) 최봉길(崔鳳吉)을 포함한 여러 사람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 일로 붙잡혀 함흥지방법원 청진지청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1921년 12월 23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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