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창섭
宋昌燮1915. 8. 20 ~ 1968. 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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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통령표창(1993)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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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1993) 1915년 8월 20일 충청남도 청양군(靑陽郡) 화성면(化城面) 농암리(農岩里)에서 태어났다. 1932년 충남 홍성군(洪城郡) 홍주면(洪州面) 대교리(大校里) 소재 구세군 강습소 제4학년을 마치고 사법 대서인(司法代書人)과 양복점 재단 견습 고용인으로 생활하였다. 1934년 여름에는 홍성군 야소교회 소년회 부회장으로 활동하였다. 1935년 1월 13일경 아산군(牙山郡) 도고면(道高面) 출신인 한명식(韓明植)으로부터 “왜놈들은 입으로는 내선융화, 농촌진흥이라 고창하는 반면 탄압 정치는 매일 매일 대단히 꿀맛 같은 달콤한 말로 조선에서는 생활하기 어려우니 이주하라고 불쌍한 우리 백의민족을 매일 북행열차에 실어 내어 보내고 있는데 이 우리의 신성한 조선을 일본 놈들에게 뺏기고 가만히 있을소냐. 우리들은 조선의 방방곡곡에서 조선 독립을 부르짖으며 또한 한국기를 휘날리고 제일선의 용감한 투사가 되어 일본정치에 만족하고 있는 조선 민족을 각성시켜 힘차게 싸우는 것은 우리들 청년의 의무이니 애국자의 선봉에 서서 힘센 무리가 되어 활동하라”라는 내용의 편지를 받게 되었다. 이 글에 감동하여 한국의 독립은 청년의 위대한 임무라 생각하였고, 같은 해 2월 9일 한명식에게 “조선 독립운동의 결심을 영원히 버리지 말고 하여라”라는 답신을 보냈다. 또한 2월 11일 자신의 집에서 한명식의 편지를 인용하여 “새해를 맞이하여 용기백배한 우리들 청년은 새로운 힘과 용맹으로 잠자고 있는 조선민족의 손을 힘차게 붙들고 조선의 방방곡곡에 태극기를 휘날리면서 제일선의 용감한 투사가 되어 일하여 달라. 우리들 청년은 일본 놈들에게 적대할 힘을 이 신년에 양성하지 않으면 우리 조선에는 일본놈들만의 것이 되니 이 중대한 책임을 생각하여 하루라도 빨리 싸워서 조선이 독립되도록 생명을 버려달라”라는 원고를 작성하였다. 이 글을 정서하여 같은 날 오후 1시경 충남 홍성군 홍성공업전수학교 생도 강신태(姜信台)·정용탁(鄭鎔鐸)·이병원(李秉遠)·이재룡(李載龍) 등에게 각각 보냈다. 이 편지가 발각되어 일제 당국에 붙잡혔다. 1935년 6월 17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등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았다. 항소하였으나 그 해 9월 1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조재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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