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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환

宋芝煥

1903. 6. 18 ~ 1929. 4.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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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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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사천(泗川)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사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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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2)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2) 1903년 6월 18일 경상남도 사천군(泗川郡) 정동면(正東面) 감곡리에서 태어났다. 소년기에 서포면(西浦面) 선전리(仙田里)로 이주하였다. 1919년 3월 해인사 경내에 설치된 해인보통학교 및 해인사 지방 학림 학생 3백 명과 승려들은 서울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난 후에 독립선언서를 전달받았다. 당시 서울에 유학 중이던 도진호(都鎭浩)로부터 독립선언서를 전달받고 송복만(宋福晩) 등과 함께 해인사의 등사판과 학교 등사판을 훔쳐내어 독립선언서 1만 장을 등사하였다. 그리고 학생대표 30명과 함께 비밀리에 모여 독립운동 방안을 결정하였다. 학생대표들과 지역별로 3인씩 소모임을 구성하여 독립선언서를 나누어 가졌다. 이후 합천(陜川)·삼가(三嘉)·초계(草溪)·의령(宜寧)·진주(晋州)·사천·곤양(昆陽)·하동(河東) 일대의 동지 박운균(朴運均)·이석순(李石淳)·이승기(李昇基)·조우제(趙佑濟)·강달영(姜達永)·임응주(林應周) 등과 함께 합세하였다. 3월 중순 곤양 장날에 만세시위를 하였고, 학생과 주민을 규합하여 독립선언서를 배부하고 시위에 나서서 ‘독립만세’를 불렀다. 1921년 사천군 소재 사립 개진학교(開進學校) 재학 당시 사천군 서포면 서포청년회 총회 석상에서 “우리 청년들은 앞서 오로지 구국의 일념으로 일제에 투쟁하다 희생된 선열들의 애국정신을 계승해야 될 것이며, 따라서 우리들은 다 함께 힘을 모아 일제에 항거하여 우리 힘으로 독립을 쟁취하자”라는 요지의 한국 독립을 표방하는 연설을 하였다. 이 일로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21년 2월 28일 1심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즉각 항소하였으나, 그 해 4월 21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조재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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