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현택
裵鉉澤1910 ~ 1931. 3. 27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함남공산당
포상 정보
- · 애족장(2009)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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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09) 함경남도 정평군(定平郡) 출신이다. 『조선일보』 신문기사에 따르면 1931년 사망 당시 22세인 것으로 보아 1910년생으로 추정된다. 1930년 흥남조선질소비료회사(興南朝鮮窒素肥料會社)에 근무하면서 함남공산당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일제강점기 조선질소비료회사는 비료와 다이너마이트 생산에 주력하여 일제의 대륙 침략 정책을 뒷받침하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이곳에서 노동자들은 열악한 작업 환경 속에서 강도 높은 노동과 저임금에 시달려야 했다. 조선질소비료회사에서 근무하면서 이러한 부당한 대우와 일본 기업의 횡포를 비호하는 조선총독부에 강한 반감을 가지게 되었다. 1928년 8월경 조선공산당의 재건을 위해 러시아에서 귀국한 고광수(高光洙) 등이 동지를 규합하여 공산당의 재조직을 협의하였다. 그 결과 1930년 6월 29일 함주군(咸州郡) 흥남읍에서 진형수(陳炯洙) 등이 조선공산당 조직준비위원회를 개최하였다. 이들은 함남 지역에서 당 재건 준비 조직인 조선공산당 함남 간부기관을 결성하고 조선질소비료회사 내에 비밀결사 노동조합인 함남공산당 지부를 조직하였다. 이때 함남공산당에 가입하여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1930년 7월 15일 동지들과 함께 회사 뒷산에서 비밀리에 모여 거사를 일으키기로 협의한 후, 일본제국주의와 일제 자본을 비판하는 격문을 작성하였다. 거사 일자를 이틀 후인 7월 17일로 정하고, 만약 이 거사가 성공하면 바로 이원군(利原郡) 소재 철산철광(鐵山鐵鑛)을 습격하는 동시에 공장의 화약고를 점령하기로 하는 등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계획을 사전에 탐지한 일제 경찰에 의해 모두 붙잡혀 함흥형무소에 갇혔다. 옥고를 겪던 중 수감 중에 겪은 고초로 인해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어 1931년 3월 25일 병보석으로 풀려났다. 흥남 자택으로 돌아와서 치료하였으나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그 해 3월 27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조영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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