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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천종

安千鍾

1870. 1. 2 ~ 1940. 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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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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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일(迎日)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영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3)

관련 사건

  • · 청하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3) 1870년 1월 2일 경상북도 영일군(迎日郡) 송라면(松羅面) 대전리(大田里)에서 아버지 안덕로(安德老)와 어머니 김영수(金永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순흥(順興)이다. 어려서부터 한문사숙(漢文私塾)에서 7년간 공부하였다. 1914년 송라면 대전리 대전교회(大田敎會)에 입교하여 신앙생활을 하며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3월 22일 영일군 청하면(淸河面)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윤영복(尹永福)은 대전리 기독교 장로파 대전교회 영수(領袖)로서, 서울·평양(平壤)·대구(大邱) 등지에서 만세시위가 전개되고 포항(浦項)에서도 3월 10일부터 12일까지 기독교 신자들에 의해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는 사실에 크게 고무되었다. 이에 윤영복은 청하면 덕성리(德城里) 덕성교회의 영수 오용간(吳用干)과 덕성교회의 교사로 있던 형 윤영만(尹永滿)을 오용간의 집과 덕성교회에서 만나 3월 22일 덕성 장날 만세운동을 벌이기로 하였다. 윤영복은 3월 18일, 오용간은 3월 21일 각자 자기 집에서 큰 태극기 1개와 작은 태극기 20개를 만들었다. 이어 윤영복은 대전교회 집사 이준석(李俊石)을 비롯한 신자들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동의을 얻었으며, 오용간도 덕성교회 신자들에게 각처에서 만세시위가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3월 21일에는 안상종(安常鍾)·이준업(李俊業)·이영섭(李泳燮)·안덕환(安德煥) 등 대전교회 신자들과 함께 3월 22일 덕성 장날을 기하여 함께 만세를 부르기로 약속하였다. 3월 22일 오후 1시경 윤영복과 오용간의 주도 아래 다른 20여 명과 함께 태극기를 들고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며 덕성리 길거리로 나아가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에 곧바로 출동한 일제 경찰에 의해 덕성장터의 만세시위를 주도한 23명과 함께 붙잡혔고,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되었다. 1919년 4월 28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8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권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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