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송재기

宋在紀

1900. 8. 4 ~ 미상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송재기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충남 논산(論山)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논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1919년 논산군 강경읍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900년 8월 4일 충청남도 논산군(論山郡) 채운면(彩雲面) 심암리(深岩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20일 논산군 강경읍(江景邑)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1919년 3월 10일 엄창섭(嚴昌燮)·고상준(高相俊)·추병갑(秋炳甲) 등의 주도로, 강경읍을 중심으로 옥녀봉(玉女峰)에서 시작하여 강경시장까지 행진하며 제1차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이틀 후 3월 12일에는 염중오(廉衆五)·염성필(廉聖弼)·박용진(朴容鎭) 등의 주도로 강경읍민과 학생 100여 명이 태극기를 흔들고 만세를 부르며 논산 읍내로 행진하는 만세시위가 이어졌다. 이러한 만세시위에 호응하여 이근석(李根奭)·이봉세(李鳳世)·이근오(李根五)와 함께 제2차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이들은 모두 20세 전후의 젊은 청년으로, 3월 16일 이근석의 집에 모여 3월 20일 강경읍에서 만세시위를 일으킬 것을 결의하였다. 그리고 3월 17일과 18일 이틀에 걸쳐 다시 이근석의 집에 모여 만세시위에 필요한 태극기 300여 기를 제작하였다. 논산군에서 강경읍이 만세운동의 주요 장소가 된 것은 일제강점기 강경읍이 이 지역 물산의 집산지이고 상업이 발달하여 많은 상가들이 밀집해 있었으며, 이에 따라 장날에 많은 군중들이 모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거사일인 3월 20일 오전 10시경, 동지들과 함께 강경시장 부근에 있는 옥녀봉에 올라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며 심암리 및 화정리(花亭里) 등의 주민 70여 명을 규합하여 시위대를 형성하였다. 옥녀봉을 만세시위의 시작 지점으로 택한 것은 주변 일대가 금강변의 넓은 평야지대로, 비록 낮은 야산이지만 사방을 관망할 수 있고 또 주변에서 쉽게 주목할 수 있어 군중들에게 시위의 시작을 잘 알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옥녀봉에서 출발한 시위대와 함께 산을 내려와 강경읍 웃시장(上市場)을 거쳐 서정(西町) 방면으로 행진하면서 독립만세를 불렀다. 그리고 미리 준비한 태극기를 대중들에게 나누어 주며 만세시위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였고, 이에 시장 일대의 많은 군중들이 호응하여 참여하였다. 이 일로 일제 경찰에 붙잡혀 1919년 4월 8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았으나 불복하여 항소하였다. 같은 해 5월 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1심 판결 취소로 6월이 줄어든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다시 상고하였으나 그 해 5월 29일 고등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출옥 후에는 1925년 『동아일보』 대전지국(大田支局) 기자, 대전 우리청년회 서무부(庶務部) 위원을 역임하며 지역민의 계몽과 교육에 기여하였다. 염원하던 광복을 보았으나 1950년 발발한 6·25전쟁 때 납북된것으로 전해진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9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박경목⋮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