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용구
邊用九1889. 10. 19 ~ 1955. 8. 1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6)
관련 사건
- · 예천군 용문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6) 1889년 10월 19일 경상북도 예천군(醴泉郡) 용문면(龍門面) 덕신동(德新洞)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원주(原州)다. 1919년 4월 3일 예천군 용문면 상금곡동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4월 3일 용문면 상금곡동(上金谷洞)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은 예천군에서 두 번째로 일어난 것으로, 용문면 죽림동(竹林洞)에 사는 유림 권석인(權錫寅) 등이 주도하였다. 예천 권씨 종손인 권석인은 서울에서 거행된 광무황제(고종)의 장례식에 참가하기 위하여 2월 29일 상경하였다가 만세운동을 현장에서 직접 목격하였고,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고향에 내려왔다. 귀향한 권석인은 육촌 형 권석호(權錫虎)와 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시위일을 예천 장날인 3월 12일로 정하고 독립선언서를 여러 장 등사하여 각 마을에 배부하였으며, 함께할 동지를 규합하였다. 이 일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일제 경찰의 감시망에 걸려 두 차례나 운동 날짜를 미룰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고 판단한 권석인은 4월 3일 저녁 긴급하게 연락을 돌려 만세운동을 실행에 옮길 것을 알렸다. 1919년 4월 3일 밤 9시 권석인·권석호·권세원(權世遠) 등 예천 권씨가 중심이 되어 먼저 죽림동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밤 10시에는 면사무소가 있는 상금곡동으로 집결하면서 상금곡동의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였는데, 이때 만세시위 대열에 합류하였다. 권석인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만세’를 선창하자 군중들과 함께 ‘독립 만세’를 외치며 행진하였다. 면사무소 앞을 지나 장터를 돌며 만세운동을 벌였으며 ‘만세’의 외침은 자정이 가까운 시간까지 이어졌다. 만세운동 소식을 접한 일제 헌병들은 서둘러 현장에 출동하였고, 총칼을 앞세워 무력으로 군중들을 해산시켰다. 일제 경찰은 모두 17명을 붙잡았는데, 이때 함께 붙잡혔다. 1919년 4월 18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홍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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