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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영홍

邊永弘

1876. 6. 25 ~ 1943. 4.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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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변영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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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예천(醴泉)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예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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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9)

관련 사건

  • · 예천군 용문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9) 1876년 6월 25일 경상북도 예천군(醴泉郡) 용문면(龍門面) 상금곡동(上金谷洞, 현 상금곡리)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원주(原州)다. 1919년 4월 3일 예천군 용문면 상금곡동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유림 권석인(權錫寅) 등이 주도한 이 만세운동은 1919년 3월 1일 서울 등 7개 도시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난 직후부터 계획되었다. 권석인은 2월 29일 광무황제(고종)의 장례식에 참가할 예정으로 서울에 갔다가 만세운동을 목격하고, 독립선언서를 지닌 채 고향인 용문면 죽림동(竹林洞)으로 내려왔다. 귀향한 권석인은 같은 마을에 사는 육촌 형 권석호(權錫虎)와 함께 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사람들이 많이 모일 예천장날을 만세운동 날짜로 정하였으나 일제 경찰의 감시로 인하여 두 차례 미룰 수밖에 없었다. 그 사이 독립선언서를 등사하여 각 마을에 배부하였으며 동지를 규합하기 시작하였는데, 예천군 호명면(虎銘面) 원곡동(原谷洞)에서 먼저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이에 거사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판단한 권석인 등은 4월 3일에 만세운동을 긴급히 소집하였다. 1919년 4월 3일 밤 9시에 권석인·권석호·권석효(權錫孝)·권세원(權世遠) 등 예천권씨(醴泉權氏) 유림들이 중심이 되어 죽림동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이후 이들은 1시간 뒤인 밤 10시 면사무소가 있는 상금곡동에서 만세운동을 이어갔다. 금곡동 사람들이 합류하던 때 만세운동에 함께 참여하였다. 군중은 수백 명으로 늘었으며 권석인의 독립선언서 낭독과 ‘만세’ 선창에 군중들과 함께 호응하여 ‘독립만세’를 외치고 행진을 펼쳤다. 시위군중과 면사무소를 지나서 장터를 돌며 자정이 가까운 시간까지 만세운동을 이어갔다. 만세운동 소식에 일제 경찰은 급히 출동하였고 총검을 앞세워 군중을 강제로 해산시켰다. 현장에서 주도 인물 11명을 체포하였고, 그 뒤에 다시 6명을 붙잡아 갔다. 권석인·권석호·박태원(朴泰元) 등이 체포되었는데, 이때 함께 붙잡혔다. 1919년 4월 8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홍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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