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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순기

邊舜基

1885. 5. 16 ~ 1971. 3.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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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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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장성(長城)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남도 장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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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건국포장(1992)

관련 사건

  • · 광주군 광주장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1992) 1885년 5월 16일 전라남도 장성군(長城郡) 장성면(長城面) 장안리(長安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광주군(光州郡) 광주면(光州面) 수기옥정(須奇屋町, 현 광주광역시 동구 수기동)에 거주한 것으로 확인된다. 1919년 3월 광주군 광주장터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10일 전라남도 광주군 읍내 장터에 약 1,000명의 군중이 모여 만세운동을 벌였다. 시위에는 광주농업학교(현 광주자연과학고등학교), 숭일학교(崇一學校, 현 광주숭일고등학교), 수피아여학교(須彼亞女學校, 현 광주수피아여자고등학교) 등 학생들과 인근 지역의 농민들도 적극 참여하였다. 이날 만세시위에 참가하여 시위대와 함께 독립 만세를 부르다가 현장에서 붙잡혀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4월 30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4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8월 13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원판결은 취소되었으나 형량은 동일한 징역 4월을 받았다. 다시 “만세를 외친 것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에 널리 퍼진 인도와 정의의 무전주의(無戰主義)에 따랐을 뿐”이라고 항변하고, “죄가 있다면 민족자결주의를 주장한 윌슨과 개방주의를 주장한 목야남(牧野男)에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상고하였지만, 그해 10월 27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풀려난 이후 신간회(新幹會) 장성지회에서 활동하였으며, 1928년 광주고등보통학교 맹휴사건 해결을 위한 학부형회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장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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