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상복
卞相福미상 ~ 1919. 4. 4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관련 사건
- · 창원군 삼진지역[진전면(鎭田面)
- · 진북면(鎭北面)
- · 진동면(鎭東面)]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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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1) 경상남도 창원군(昌原郡) 진전면(鎭田面) 일암리(日岩里) 출신이다. 출생시기는 확인되지 않는다. 1919년 농업에 종사하다가, 4월 3일 창원군의 삼진지역[진전면·진북면(鎭北面)·진동면(鎭東面)]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다가 일제 헌병에게 희생되었다. 창원군에서는 3월 중순부터 4월 말까지 장기간 지속적으로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이 지역의 만세시위가 가장 최고조에 이르렀던 4월 초, 진전면·진북면·진동면의 연합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이 만세시위는 3월 28일 진동면 오서리(五西里)의 고현장터 장날에 전개된 시위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고현장터의 만세시위는 변상섭(卞相攝)·권영대(權寧大)·권태용(權泰容)·변상태(卞相泰)·권영조(權寧祚)·이교영(李敎映)·변상술(卞相述) 등의 주도로 일어났다. 이들은 3월 28일 오후 1시경부터 장터로 나와 500여 명의 주민들과 함께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며 만세시위를 전개하였으나, 진동헌병주재소의 헌병들과 마산의 일본군 중포병대대의 강제 진압으로 이날 오후 5시경 주도자들의 상당수가 붙잡혔고, 만세시위는 해산되었다. 이때 일제 헌병에 끌려가지 않은 변상섭·변상술·권영대·변상태 등은 폭력적인 일제에 반발하여 삼진지역에서 다시 대대적인 만세시위를 벌일 것을 결의하였다. 이 과정에서 황태익(黃泰益)·구수서(具守書)·변우범(卞又範)·변상헌(卞相憲) 등 지역의 인사들이 동지로 결합하여 만세시위의 준비에 착수하였다. 이들은 논의를 통해 삼진 만세시위의 거사일을 4월 3일로 결정하고, 시위의 선두에 세울 대형 태극기 6기와 현장에서 주민들에게 배포할 소형 태극기 수십 개를 제작하였다. 또한 만세시위에 인근 주민들의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주도자들이 각각 지역을 분담하여 마을별 연락을 담당하였다. 진전면 일대의 연락을 담당한 변상섭·변우범·변상헌 등으로부터 만세시위에 대한 계획을 전달받고, 만세시위 참여를 결의하였다. 거사일인 4월 3일 오전 일찍 사전에 연락받은 진전면 양촌리(良村里)의 냇가로 향하였다. 오전 9시 경 냇가에 큰 태극기가 세워지자 3개 면에서 나온 많은 주민들이 태극기의 주변으로 운집하기 시작하였고, 그 규모는 수천 명을 헤아렸다. 이에 변상태는 주민들의 앞으로 나와 “오늘부터 우리는 자유 민족이며 자유국(自由國)의 국민이다. 일본의 간여는 추호라도 받으면 안 된다. 최후의 1인까지 최후의 1각까지 독립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싸워야 한다.”라고 연설하였다. 뒤이어 변상섭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후, 다시 변상태가 나서서 큰 목소리로 ‘조선독립만세’를 선창하였다. 이에 다른 주민들과 함께 일제히 호응하여 큰 목소리로 ‘조선독립만세’를 따라 외치면서 만세시위를 시작하였다. 변상태·변상섭 등의 지휘에 따라 시위대를 형성하고, 선두의 대형 태극기를 따라 ‘조선독립만세’를 연창하며 3월 28일 고현장터 만세시위를 폭력으로 진압한 진동면의 일제 헌병주재소로 행진을 시작하였다. 행진 도중 이에 공감한 많은 주민들이 속속 동참하여 시위대의 규모는 더욱 확대되었다. 오후 2시경, 시위대의 선두가 진북면 사동리(社洞里)의 다리에 이르렀을 때, 만세시위 발생 소식을 접한 진동 주재 일제 헌병 및 보조원 8명과 현지 일제 재향군인 30여 명이 시위대를 가로막고 해산을 명령하였다. 그러나 변상태·변상섭 등의 지휘에 따라 이를 거부하고, 일제 헌병대 및 재향군인들에 맞서 투석전을 벌이고 몸싸움을 전개하였다. 수천 명의 주민들이 격렬한 만세시위를 전개하자, 일제 헌병들은 총검을 휘두르며 폭력적인 진압으로 대응하였다. 그러나 소수의 헌병들로는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일제는 해당 지역의 일본인 재향군인들과 마산의 중포병대대의 병력을 지원하여 시위 진압에 나섰다. 계속되는 일제의 폭력적인 진압에 더욱 분노하여 시위 군중과 함께 더욱 격렬하게 일제의 폭력진압에 저항하였다. 이에 헌병대와 중포병대대의 일본군들은 비무장한 시위대를 향해 무차별적으로 발포하였고, 이 날 김수동(金守東)·변갑섭(卞甲燮)·김영환(金英煥)·고묘주(高昴柱)·이기봉(李基鳳)·김호현(金浩鉉)·홍두익(洪斗益) 등과 함께 시위 현장에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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