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두구
邊斗九1896. 6. 20 ~ 1967. 7. 28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5)
관련 사건
- · 예천군 용문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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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1995) 1896년 6월 20일 경상북도 예천군(醴泉郡) 용문면(龍門面) 상금곡동(上金谷洞)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원주(原州)다. 1919년 4월 3일 예천군 용문면 상금곡동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가 붙잡혀 옥고를 겪었다. 예천군 용문면 상금곡동 만세운동은 유림 권석인(權錫寅)이 주도하여 일어났다. 이 만세운동은 호명면(虎銘面) 원곡동(原谷洞)에 이어 예천군에서 두 번째로 일어난 만세시위였다. 만세운동을 주도한 권석인은 2월 29일 고종의 인산(因山)에 참가하기 위하여 서울에 올라갔다가 만세운동을 직접 보고, 「독립선언서」를 지닌 채 고향인 용문면 죽림동(竹林洞)으로 내려왔다. 권석인은 고향에서 만세운동을 일으킬 것을 결심하고 같은 마을에 사는 재종형(再從兄) 권석호(權錫虎)와 논의하였다. 거사 날짜는 예천 장날인 3월 12일로 정하고 독립선언서를 등사하여 여러 마을에 배부하였으며, 뜻을 함께 할 사람들을 모았다. 그러나 이러한 움직임이 사전에 일제 경찰의 감시망에 포착되면서 날짜를 다음 장날인 3월 17일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17일의 거사 계획도 일제의 삼엄한 경계로 부득이하게 실행되지 못하였다. 계획이 미뤄지는 동안 호명면 원곡동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났고,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판단한 권석인은 4월 3일 밤 비밀리에 긴급 연락을 돌려, 이날 만세운동을 거행할 것임을 알렸다. 밤 9시경 권석인·권석호·권세원(權世遠)·권석효(權錫孝) 등 예천 권씨가 주도가 되어 죽림동에서 먼저 만세운동을 일으켰고, 밤 10시쯤에는 면사무소가 있는 상금곡동으로 집결하였다. 이때 만세시위에 동참하였는데, 많은 사람들이 모여 시위대는 수백 명에 이르렀다. 권석인의 독립선언서 낭독과 만세 선창이 있은 후, 수많은 군중들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며 행진하기 시작하였다. 면사무소 앞을 지나 장터를 돌며 자정이 가까운 시간까지 만세운동은 이어졌다. 이 소식을 접한 일제 경찰은 급히 출동하였고, 총칼을 앞세워 군중을 위협하여 강제로 해산시켰다. 그리고 만세운동 현장에서 주도 인물 11명을 체포하고, 그 뒤에 다시 6명을 추가로 붙잡아 갔다. 이때 주도 인물들과 함께 붙잡혀 재판에 넘겨졌다. 1919년 4월 8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4월을 받아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홍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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