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혁모
裵赫模1875. 12. 9 ~ 1960. 4. 19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안동군 임동면 중평동 편향시장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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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75년 12월 9일 경상북도 안동군(安東郡) 임북면(臨北面) 사월동(沙月洞)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흥해(興海)이다. 1919년 3월 21일 안동군 임동면(臨東面) 중평동(中坪洞) 편항시장(鞭巷市場)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임동면 중평동 편항시장 만세운동을 처음 계획한 유연성(柳淵成)은 서울 만세운동 소식을 접한 후 안동군 만세운동을 결심하게 되었다. 유연성은 유동수(柳東洙)·이강욱(李康郁)·박진선(朴晋先) 등을 규합하여 편항시장에서 만세운동을 펼치기로 결정하고, 임동면의 여러 지역을 맡아 동민들을 동원하기로 하였다. 이때 시위 계획 소식을 듣고 동참을 결심하였다. 거사 당일인 1919년 3월 21일 아침 집을 나서 중평동 편항시장으로 향하였다. 오후 2시 유연성이 장터 중앙으로 나와 군중들에게 연설하기 시작하였다. 유연성은 왜 만세운동을 해야 하는지 연설한 후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유연성의 만세 선창에 장터에 나온 마을 주민들과 함께 일제히 만세를 외쳤다. 장터 중앙에서 시작된 만세운동은 점점 더 확대되어 장터 전체로 퍼졌고 시위에 동참하는 주민들의 숫자도 늘어났다. 만세운동의 열기가 높아지자 시위 소식을 들은 일제 경찰이 현장에 급파되어 주도자들을 붙잡으려 하였다. 일제 경찰의 강압적인 체포에 배태근(裵太根)이 저항하자 경찰 한 사람이 배태근의 뺨을 때리는 일이 일어났다. 이를 본 군중들은 이를 저지하였고, 군중들의 기세에 놀란 경찰은 주재소로 달아나 버렸다. 기세가 오른 시위 주도자들은 주재소로 달려갔다. 유연성·유동수·배태근·박진선 등이 선두에서 시위를 이끌었고, 500여 명의 시위대와 함께 뒤를 따랐다. 주재소에 이른 시위대는 일경의 권총 위협에도 출입문을 부수고 들어가 주재소 벽과 창문 등을 모두 부수고 사무실 내의 책상과 의자, 비품 등도 모두 파괴하였다. 장부와 문서 등은 찢어 파기한 후 창문 밖으로 던져버렸다. 경찰에게서 빼앗은 대검과 권총은 주재소 안에 있던 무기들과 함께 모아 주재소 뜰에 있는 우물 안에 버렸다. 이어 유교희(柳敎熙)·유동환(柳東煥)·권중희(權重熙) 등과 함께 경찰 숙소로 이동하였다. 시위대는 경찰 숙소의 벽과 창문, 유리창을 모두 파괴하고, 숙소 안으로 들어가 침대와 책상 등의 비품과 의복 등도 모두 버렸다. 시위대의 격렬한 저항에 주재소와 경찰 숙소는 기둥과 지붕만 남긴 채 모두 파괴되었다. 주재소 시위를 마친 후 시위대는 계속해서 면사무소로 가서 만세운동을 이어나갔는데, 이때 시위대를 빠져나와 마을로 돌아왔다. 일제는 다음날부터 만세운동 관련자 검거를 위하여 대대적인 작전을 펼쳤는데, 이 과정에서 동지들과 함께 붙잡혔다. 1919년 5월 31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소요죄, 건조물손괴죄, 가택침입죄, 상해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지만 같은 해 8월 18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원판결이 취소되고 징역 1년을 받아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정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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