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배윤명

裵允明

1881 ~ 미상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배윤명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전북 전주(全州)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북도 전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9)

관련 사건

  • · 전주군 전주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9) 전라북도 전주군(全州郡) 전주면(全州面) 다가동(多佳洞) 출신이다. 1919년 당시 판결문에 따르면 39세로 1881년생으로 추정된다. 전주 읍내에서 신발(靴)을 만들어 팔며 생계를 꾸렸다. 1919년 3월 14일 전주면 완산동(完山洞)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에 주도적으로 참가하였다가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전주로 독립선언서가 전달되었다. 이후 주로 군내(郡內)의 기독교도와 천도교도, 그리고 학생들을 중심으로 만세운동이 벌어졌다. 3월 13일 전주면 읍내의 장날에 한 차례 대규모 만세시위가 일어난 이후 계속해서 전주 군내 곳곳에서 만세운동이 전개되었다. 3월 14일 오후 3시 무렵 전주 완산동에 있는 완산교(完山橋) 부근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에 주도적으로 참가하였다. 박상선(朴尙鮮)·최병태(崔炳台)·김수천(金壽千) 등을 비롯한 300여 명의 군중과 함께 완산교 부근에서부터 김제가도(金堤街道)를 따라 읍내 일대를 행진하면서 군중의 선두에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시위 행진이 계속되면서 군중의 수는 크게 늘어났으며, 전날 시위에 가담했던 기독교도·천도교도·학생들 상당수도 다시 시위에 참여하였다. 이때 시위 군중은 읍내 경찰 파출소와 우편국 앞으로 몰려가 전날 시위에서 붙잡혀 간 이들을 석방할 것을 요구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일제 경찰과 수비대가 출동해 시위대를 강제로 해산시켰고, 그 과정에서 다른 동지들과 함께 일본 경찰에 붙잡혔다. 모진 조사를 받고 결국 석방되지 못하고 재판에 넘겨졌다. 1919년 6월 24일 광주지방법원 전주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고태우⋮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