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용석
裵容奭1890. 11. 17 ~ 1938. 11. 25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2)
관련 사건
- · 의성군 비안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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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02) 1890년 11월 17일 경상북도 의성군(義城郡) 비안면(比安面) 쌍계동(雙溪洞)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2일 비안면 쌍계동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가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비안면 만세운동은 김원휘(金原輝)와 박영화(朴永和)가 주도하여 준비되었다. 김원휘는 평양신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평양에 체류하던 중, 3월 3일 일어난 만세운동을 목격한 후 진학을 포기하고 곧바로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을 쌍계동 장로교회 목사인 박영화(朴永和)에게 전하며, 자체적인 만세운동을 준비하자고 강력히 주장하였다. 이에 공감한 박영화는 주변 기독교인을 중심으로 동지를 규합하기로 결정하고, 3월 6~7일경 쌍계동과 안평면(安平面) 괴산동(槐山洞)의 교회당에서 박영달(朴永達) 등과 만나 전국적인 만세시위 소식을 전하였다. 이들은 의기투합하여 함께 만세운동을 준비하기로 결의하고, 교인들과 주민들에게 이 사실을 은밀히 전파하며 동참을 유도하기로 하였다. 이때 비안면의 만세운동 거사 준비 소식을 접하자 대의에 찬동하고, 이일만(李一萬)·박세길(朴世吉)·배도근(裵道根)·김명출(金明出)·박주욱(朴宙郁)·배용도(裵容度) 등과 함께 참가하기로 약속하였다. 이후 박영화 등 주도자들은 3월 12일 정오를 기해 거사를 단행하기로 결정하였다. 거사일인 3월 12일 오후 1시경 비안공립보통학교 학생들과 거사 소식을 듣고 모인 주민 등 200여 명의 시위대는 쌍계동 박영신(朴永新)의 집 앞 도로에 운집하였다. 시위 주도자들은 미리 준비한 태극기를 군중에게 배포하였다. 이때 다른 참가자들과 함께 주도자들의 선창을 따라 ‘독립만세’를 부르며 만세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시위대는 동네를 행진하며 독립의 열망과 의지를 드러냈고, 마지막으로 마을 뒷산에 올라 ‘독립만세’를 외친 후 자진 해산해 평화적인 집회를 마무리하였다. 하지만 그날 오후 4시 만세시위에 관한 급보를 받고 파견된 의성경찰서의 한국인 경찰들과비안주재소 경찰들이 함께 주도자들을 대대적으로 붙잡았다. 이때 붙잡혀 결국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4월 17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지만, 같은 해 5월 14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원판결이 취소되었지만, 다시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홍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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