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劉夢龍

夢龍

1922. 12. 21 ~ 1961. 8. 20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劉夢龍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경남 거창(居昌)학생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거창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서중독서회(무등회)

포상 정보

  • · 건국포장(1992)

관련 사건

  • · 서중독서회(무등회) 사건
  • · 제2차 광주학생독립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1992) 1922년 12월 21일 경상남도 거창군(居昌郡) 거창읍(居昌邑) 정장리(正莊里)에서 태어났다. 일제가 창씨개명을 강요하자 중촌원조(中村原助)로 고쳤다. 1936년 3월, 15세의 나이에 광주 서석공립보통학교(瑞石公立普通學校)를 졸업하고, 같은 해 4월 광주고등보통학교(光州高等普通學校)에 입학하였다. 광주고보는 1926년의 ‘성진회(醒進會) 사건’과 1929년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난 광주지역 항일투쟁의 중심지였다. 이러한 민족적 투쟁은 입학하기 전 해인 1935년에도 일어났다. 당시 5학년생 송흥길(宋興吉) 등을 중심으로 조직적인 민족의식 고취를 위한 움직임이 있었으나, 발각되어 관련자들이 퇴학당하였다. 이러한 선배들의 활동을 이어 3학년이던 1938년 주만우(朱萬尤)·강한수(姜漢秀) 등과 함께 ‘독서회’를 만들었다. 이 모임은 1938년 3월 광주고보가 광주공립서중학교(光州公立西中學校)로 개칭되면서, 서중독서회라고 불리게 되었다. 그러나 같은 해 9월, 이른바 ‘소행불량(素行不良)’으로 퇴학처분을 받게 되었다. 퇴학당한 이후에도 독서회원들과 함께 민족의식을 고취하며 독립을 위한 다양한 논의를 이어갔다. 1941년 9월, 서중을 졸업하고 담양군(潭陽郡) 무정면(武貞面) 무정공립국민학교 교사로 재직 중이던 주만우와 만나 “현재 조선인과 일본인 사이에는 심한 차별이 있으므로, 이를 없애기 위해서는 민족적으로 단결하여 조선을 독립시켜야 한다.”고 논의하는 가운데, 이를 실행하기 위한 사항들을 협의하였다. 또한 같은 해 10월에는 동급생이자 무등회(無等會, 서중독서회의 후신)의 중심 인물이었던 남정준(南廷俊)을 만나 독립과 관련된 논의와 함께, “만일 독립이 불가능하다면 민족적 단결과 함께 조선인의 문화수준을 높여 일본인과 동등한 수준에 도달시켜 조선을 일본의 자치령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어 12월에는 강한수에게 “진주만 공습으로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것은 우리 민족이 독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므로 민족적 단결을 통해 조선을 독립시켜야 할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1942년 1월 무등회 조직이 탄로되면서 일본 경찰에 붙잡혔다. 1년 가까이 미결수 신분으로 구류되었다가, 1942년 12월 26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노상균⋮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