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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동

朴喆東

1915 ~ 1941. 1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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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박철동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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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청주(淸州)중국방면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북도 청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중국군관학교 낙양분교 한인특별반
  • · 조선민족혁명당
  • · 조선의용대
  • · 조선의용대 화북지대

포상 정보

  • · 애국장(1993)

관련 사건

  • · 후쟈장 호가장전투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3) 충청북도 청주군(淸州郡)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936년 당시 21세로, 1915년생으로 추정된다. 이명으로 장의·장걸(張傑)·청길(淸吉) 등을 사용하였다. 충주에서 학생운동에 참가하였다가, 일제에게 요시찰 인물로 분류되어 감시가 강화되자, 1931년 12월 중국 선양(瀋陽)으로 탈출하였다. 선양에서 취직을 하고 야학에 다니던 중, 1933년 난징(南京)의 한인독립운동 진영에서 파견한 인물의 소개로 본격적인 독립운동을 위해 10월 초 난징으로 출발하였다. 난징으로 가던 중 일경에 붙잡혀 고문당하는 등의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1934년 2월 초 중국육군관학교 뤄양(洛陽)분교 한인특별반에 입교하였다. 1935년 4월 졸업한 뒤, 같은 해 7월 창당한 민족혁명당에 가입하였다. 이후 민족혁명당의 명령에 따라 화남(華南)지역에 파견되었는데, 가던 도중 푸졘성(福建省) 취앤저우(泉州) 나루터에서 일본군에게 붙잡혔다. 일본 규슈(九州) 나가사키(長崎)로 압송되어, 징역 3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1938년 가을 풀려나 고향으로 돌아왔으나, 일제 경찰의 눈을 피해 다시 중국으로 망명하여, 산시성(山西省) 윈청(運城) 지역으로 갔다. 애국청년들을 모아 담벼락에 반일 선전표어를 붙이는 등의 반일활동을 전개하다가, 무장투쟁에 참여하기 위해 1939년 뤄양으로 가서 조선의용대(朝鮮義勇隊)에 참여하였다. 1941년 중국공산당 항일근거지로 이동한 조선의용대 주력은 조선의용대 화북지대로 개편하고, 화북지역에 있는 한인들을 대상으로 무장선전 활동을 전개하였다. 화북지대는 3개 대로 나뉘어 평한철도(平漢鐵道) 연선에서 활동하였는데, 제1지대 2분대에 소속되어 김세광(金世光)의 인솔 하에 허베이성(河北省) 스쟈장(石家庄) 부근의 위안쓰현(元氏縣)·잔황현(贊皇縣)·린청현(臨城縣) 일대를 무대로 활동하였다. 1941년 11월 중순경 제2대 20여 명의 대원들은 스쟈장 각 지역의 정세를 살피고 무장 선전활동을 위한 선전물을 준비해 의용대 총부 소재지인 산시성 통위진(桐峪鎭)을 출발해 위안쓰현에 이르렀다. 대원들은 좌담회와 군중집회를 열고, 일본군에 접근하여 유창한 일본어로 일본 제국주의와 군국주의 죄행을 폭로하면서 전쟁을 멈출 것을 권고하는 선무공작을 하였으며, 반일 구호를 벽에다 쓰거나 선전물을 나누어 주었다. 서안사변 기념일인 12월 12일 제2대 대원들은 후쟈장(胡家庄) 마을에서 선전활동을 하기 위해, 11일 후쟈장에서 숙영하게 되었다. 이날 밤 후쟈장 마을에 살던 일본군 첩자의 가족이 의용대의 상황을 일본군에게 알리는 바람에, 일본군은 잔황, 훠루(獲鹿), 징징(井陘) 등 지역에 있던 200명의 병졸들을 끌어 모아 3면으로 마을을 포위하고 공격해 왔다. 12월 12일 날이 밝으면서 마을 밖에서 총소리가 들려오자, 대원들은 신속히 일어나 탈출계획을 모색하였다. 부근에 있던 팔로군 독립영(獨立營) 1연(聯)이 조선의용대를 지원하기 위해 일본군과 대치하는 가운데 일어난 총소리였다. 적정 보고를 받은 김세광 대장은 마을 북쪽으로 철수를 명령하고, 손일봉(孫一峰)·김학철(金學鐵) 등과 함께 대원들이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도록 엄호하였다. 덕분에 대부분의 대원들은 포위망을 뚫고 나왔지만, 엄호를 맡은 이들은 부상을 입고 뒤에 처지고 말았다. 손일봉은 하나밖에 남지 않은 수류탄을 들고 산굽이를 돌아오는 8명의 일본군 속으로 덮쳐들어 함께 장렬히 산화하였다. 이를 보고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 일본군 두 명을 쓰러뜨린 다음, 가슴을 내밀고 “찔러라, 강도놈아!”라고 외치며 사망하였다. 현재 허베이성 잔황현(赞皇縣) 황북평촌(黄北坪村)에 묘와 기념비가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김승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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