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달선
徐達善1878. 12. 22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농민단
- · 대한청년독립단
- · 평안남도통신연중앙기관
포상 정보
- · 애국장(2013)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13) 1878년 12월 22일 평안남도 강동군(江洞郡) 원탄면(元灘面) 송오리(松塢里)에서 태어났다. 자료의 한계로 만주로 이주한 시기는 확인할 수 없다. 1919년 만세운동 이후 중국 콴뎬현(寬甸縣)에 위치한 대한독립광복군(大韓獨立光復軍)의 사령관 이탁(李鐸)은 김봉규(金琫圭)를 평안남도 총관(總管)으로 임명하여, 각지에 광복군 지부를 설립하도록 하였다. 1920년 8월 중순 김응규(金應奎) 등 강동군 비밀결사들이 농민단을 조직하였다. 이근배(李根培)·이성규(李成奎)·이환욱(李桓郁) 등을 중심으로 조직된 농민단은 우선 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하여 민심을 동요하게 한 뒤, 그 틈을 이용하여 군자금 모금을 쉽게 하는 것이었다. 구체적으로 먼저 강동경찰서를 비롯하여 군내 원탄주재소와 고천주재소에 폭탄을 투척해 폭파하려고 하였다. 이러한 계획에 따라 같은 해 9월 18일 이근배·이죽수(李竹水)·최인택(崔仁澤)·최선식(崔善植) 등과 함께 강동경찰서에 폭탄을 던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간도지역의 무장독립단체들의 국내 진격작전에 참여하여 이수영(李洙泳)·문창선(文昌善) 등과 함께 성천군(成川郡) 대곡면(大谷面)의 주재소를 습격하였다. 같은 달 30일 원탄면에 거주하던 이관식(李寬植)으로부터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1921년 3월 평남 대동군(大同郡)에서 대동청년독립단(大同靑年獨立團)을 조직하고 만주에 위치한 광복군총영으로부터 무기를 지원받아 단원을 확충하고 군자금을 모집하고자 하였다. 같은 달 30일 김국홍(金國洪)의 안내로 김석준(金錫俊)과 함께 대동군 일대에서 군자금 모집과 독립문서 배포 등의 활동을 하였다. 이어 4월 17일과 27일 강동·성천(成川) 등지에서도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하였다. 같은 해 12월 23일 광복군총영 모험부장 겸 비서 주석환(朱錫煥) 등과 강동군에서 광복군총영과 국내 독립단과의 통신연락을 목적으로 평안남도 통신연중앙기관(通信聯中央機關)을 조직하였다. 이 시기 광복군 특무부 서기(特務部書記)로 임명 받았다. 1922년 1월 7일 일본연합수색대에 의해 주석환·정석흥(丁錫興)·서상목(徐相穆)등 45명과 함께 붙잡혔다. 같은 해 4월 19일 평양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과 강도죄 등으로 징역 13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8월 10일 평양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평양형무소에서 7년 2개월 10일 동안 옥고를 겪고, 1929년 3월 25일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3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김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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