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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규

白南奎

1867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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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백남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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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남 순천(順川)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남도 순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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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0)

관련 사건

  • · 순천군 자산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10) 평안남도 순천군(順川郡) 자산면(慈山面) 청룡리(靑龍里) 출신이다. 1919년 판결문에 따르면 53세로 기록된 것을 보아 1867년생으로 추정된다. 당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3월 4일 평안남도 순천군 자산면 자산시장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평안남도 순천군 만세운동은 일찍이 시작되었다. 신창면(新倉面)의 경우 2월 28일에 이미 기독교인에 의하여 독립선언서가 은밀히 반입되어 감리교회 목사를 중심으로 지역 유지·면장·천도교·기독교가 합세하여 사전 준비에 돌입하였고, 3월 2일부터 1,000여 명이 넘는 시위대가 만세를 불렀다. 3월 2일에는 은산(殷山)에서, 4일에는 자산에서, 5일에는 순천 읍내에서, 6일에는 다시 자산에서 2,000 명 규모의 시위가 일어났다. 1919년 3월 4일 자산면에서는 천도교구장 김선오(金善五)를 중심으로 천도교인과 시민 1,000여 명이 합세하여 만세시위가 시작되었다. 이때 시장에 나와 있다가 만세시위에 참여하여 적극적으로 ‘독립만세’를 부르며 행진에 나섰다. 시위에 놀란 일제 경찰은 천교도와 기독교 지도자들을 불러놓고 만세시위를 중단할 것을 종용하였다. 하지만 천도교와 기독교 양측은 다시 3월 6일 대규모 시위를 일으켰다. 6일에는 2,000여 명의 군중이 야산당공원(野山唐公園)에 운집하여 독립기념대회를 열었다. 대회장에는 태극기가 휘날렸고 독립선언서가 배포되었다. 시위대는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면서 가두 행진을 하였다. 일본군 수비대가 강제 해산을 감행하였고 이 과정에서 다수가 붙잡혔고 11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결국 이 일로 일제 경찰에 붙잡혀 재판에 넘겨졌다. 1심 재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여, 1919년 5월 27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징역 8월로 감형을 받았다. 다시 무죄를 주장하며 상고하였지만, 같은 해 7월 3일 고등법원에서 최종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윤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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