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在囿
在囿1879. 11. 18 ~ 1945. 3. 10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종교
- · 흥업단
포상 정보
- · 애국장(1995)
관련 사건
- · 임오교변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5) 1879년 11월 18일 함경남도 홍원군(洪原郡) 삼호면(三湖面) 풍상리(豊上里, 현 낙원군 세포리)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호는 백람(白嵐)이다. 어려서 고향에서 한학을 수학하였고, 1901년 이후 민족 교육을 위해 교사로 근무하였다. 약 10년간 사숙교원(私塾敎員)으로 근무하다가 1910년 경술국치를 당하자 만주 펑톈(奉天)으로 이주하였다. 1920년 흥업단(興業團)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흥업단은 1920년 만주 펑톈성 푸쑹현(撫松縣)에서 윤세복(尹世復)·김혁·(金赫)·김호(金虎) 등이 조직한 독립운동 단체이다. 흥업단은 표면상으로는 산업을 진흥시키며 이주 한인들의 순수한 친목을 도모한다고 표방하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항일 무장 투쟁을 목표로 독립운동 기지 건설에 심혈을 기울였다. 흥업단 결성 초기에는 신민부(新民府) 중앙집행위원회 위원장인 김혁이 흥업단을 이끌었으나 그 뒤 대종교(大倧敎)의 제3대 교주 윤세복이 이 단체를 이끌었다. 흥업단 단장으로 선임된 김호 외에 이원일(李源一)·오제동(吳濟東)·이현익(李顯翼) 등 대종교도들이 중견 간부로 활동하였다. 이들은 단군의 홍익인간 정신을 정통 사상으로 삼아 활동하였다. 흥업단은 1921년 10월 14일 군비단(軍備團)·광복단(光復團)·태극단(太極團) 등과 함께 통합되어 대한국민단(大韓國民團)으로 조직되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산하로 들어갔다. 1922년 대종교에 입교하여 북일도시교당(北一道施敎堂) 시교원(施敎員)과 경의원(經議院) 참의(參議)를 역임하였다. 1940년 대종교 교적(敎籍) 간행회, 1942년 천진전건축주비회(天眞殿建築籌備會) 발기에도 참여하였다. 1934년 대종교 총본사가 중국 닝안현(寧安縣) 동경성(東京城)으로 옮겨온 이후 교세가 나날이 확장되고 독립운동 세력으로 발전하였다. 이에 일제는 1942년 임오교변(壬午敎變)을 일으켜 대대적으로 대종교를 탄압하였다. 임오교변은 당시 서울 조선어학회에서 활동하던 이극로(李克魯)가 대종교 제3대 교주 윤세복에게 보낸 편지에 동봉된 ‘널리 펴는말’이란 제목의 원고를 일제가 검열 과정에서 조작한 사건이다. 이극로의 원고 중에서 ‘널리 펴는 말’이라는 제목을 일제가 「조선독립선언서」로 바꾸고, 내용 마지막 부분의 ‘일어나라 움직이라! 한배검이 도우신다’라는 구절을 ‘봉기하자 폭동하자! 한배검이 도우신다’라고 날조하여 대종교를 대대적으로 탄압하는 빌미로 삼았다. 그리하여 같은 해 11월 19일 그는 대종교 제3대 교주 윤세복·김영숙(金永肅)·안희제(安熙濟)·나정문(羅正紋) 등 대종교 간부들과 함께 붙잡히게 되었다. 지린성(吉林省) 둔화현(敦化縣) 자택에서 붙잡혀서 닝안현 경무과에 설치된 특별 취조 본부에서 약 4개월 동안 모진 고문을 당하였다. 그 후 징역 5년을 받고 액하감옥(掖河監獄)에서 옥고를 겪다가 1944년 5월 7일 병보석으로 풀려났다. 그러다 다시 지린감옥에 투옥되어 1945년 3월 10일 옥중에서 사망하였다. 대종교에서는 당시 사망한 권상익(權相益)·이정(李楨)·안희제·나정련(羅正鍊)·김서종(金書鍾)·강철구(姜鐵求)·오근태(吳根泰)·나정문·이창언(李昌彦) 등 10명을 ‘임오십현(壬午十賢)’ 또는 '순교십현(殉敎十賢)'이라고 한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이동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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