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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丙喆

丙喆

1887. 5. 28 ~ 1925. 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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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丙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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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밀양(密陽)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밀양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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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의열단

포상 정보

  • · 애국장(1995)

관련 사건

  • · 밀양폭탄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5) 1887년 5월 28일 밀양도호부(密陽都護府) 부내면(府內面) 가곡리(駕谷里, 현 경상남도 밀양시 가곡동)에서 태어났다. 일제 관헌자료 및 신문기사에는 이름의 한자가 炳喆 혹은 炳哲로 표기되기도 하였다. 1907년 5월 동향 선배인 윤세린(尹世麟, 윤세복(尹世復)의 이명)과 함께 판임관(判任官) 9급인 탁지부(度支部) 기수(技手)로 임용되었다. 그후 임시재무조사국에서 임시재원정리국, 임시재원조사국으로 거듭 전보(轉補)되다 경술국치를 당하자 1911년 10월에 조선총독부의 임시토지조사국 대구(大邱)출장소 기수 직을 그만두었다. 늦어도 1918년 이전에 만주로 망명한 것으로 보이며, 남만주 안둥현(安東縣, 현 단둥시)에서 여관을 운영하며 광복회(光復會) 계통의 비밀연락기관 겸 편의 제공처 역할을 맡아 운영하는 동향인 선배 독립운동자 손일민(孫逸民)과 연락이 닿았거나 손일민의 권유를 받고 안둥현으로 가서 정착한 것 같다. 그 곳 2번통(二番通)에 미곡점 원보상회(元寶商會)를 개점해놓고 비밀연락기지의 하나로 삼아서, 국내와 만주, 중국 관내를 오고가는 독립운동자들에 대한 숙식 제공 혹은 알선, 연락사항 중계, 물건 보관, 운송 관련 업무 대행 등의 여러 편의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1919년 11월 지린(吉林)에서 암살·파괴 활동 위주의 독립운동 비밀결사 의열단(義烈團)이 창립되어 국내 일제기관 총공격 계획을 세우고 준비 작업에 돌입하였다. 단장 김원봉(金元鳳)과 부단장 곽재기(郭在驥), 선임단원 이성우(李成宇)가 상하이(上海)로 가 폭탄 3개를 구입하였다. 이후 1920년 3월에 안둥현의 영국인 세관원에게 소포로 부쳤고 이를 곽재기가 안둥으로 와서 찾아서 맡겼다. 곽재기로부터 넘겨받은 폭탄을 수수 20가마 속에 숨겨 포장하고 4월 중순에 안둥현 역전의 조선인 운송점인 의신공사(義信公司)에 위탁하여 밀양 역전의 화물운송점으로 부치게끔 해놓았다. 그리고는 기차를 타고 뒤쫓아 갔다. 밀양역에서 화물을 찾아 폭탄만 따로 빼내 동지 김병환(金鉼煥)에게 넘겼고, 김병환은 미곡상을 겸하는 내일동(內一洞)의 자기 집 마루 밑에 숨겨놓았다. 안둥으로 돌아가는 길에 서울에 들러서, 전동여관(典東旅館)에서 만난 의열단원 배중세(裵重世)에게 2차로 운송될 폭탄을 수령하여 보관해줄 것을 요청하여 승낙 받았다. 안둥현 귀환 후 5월 초에는 이성우가 휴대하고 배편으로 상하이에서 가져온 폭탄 13개와 권총 2정 및 탄환 100발 등을 건네받았다. 그 무기묶음을 옥수수 다섯 포대 속에 넣어서 포장하고 다른 열다섯 포대와 뒤섞어 화물인 것처럼 위장하여, 배중세를 인수인으로 적기하고 부산진역(釜山鎭驛)의 김명국(金鳴國) 운송점으로 탁송하였다. 인수받은 배중세는 경남 김해군(金海郡)의 진영역(進永驛)을 거쳐 창원군(昌原郡) 동면(東面) 무점리(武店里, 현 통합창원시 의창구 동읍 무점리) 강상진(姜祥振)의 집으로 운반하여 숨겨두었다. 그러나 이러한 일련의 동향이 밀정에 의해 일경에 보고되니 수사가 개시되어, 밀입국 후 서울·부산(釜山)·밀양 등지에서 은신 대기 중이던 의열단 창립단원 다수와 국내 협력자들이 속속 붙잡혀갔고, 숨겨둔 폭탄과 권총도 두 곳서 모두 적발 압수되고 말았다. 의열단의 최초 국내거사 계획은 실패로 귀착되고 말았다. 안둥에 있었기에 피체는 면했지만, 무기류의 국내밀송 반입을 위해 자아내고 쏟았던 지혜와 수고로움이 죄다 헛것이 되고 말았다. 그 얼마 후인 1921년 봄에 가족을 데리고 지린성 닝안현(寧安縣)의 닝쿠타(寧古塔)로 옮겨갔다. 거기서 김좌진(金佐鎭)의 휘하에 들어가 의열단 결사대원을 모집했다고도 한다. 그러다 폐병(肺病)을 앓게 되었고, 그로 인해 39세를 일기로 순국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김영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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