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서창인

徐昌仁

1899. 2. 3 ~ 1928. 10. 1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서창인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충남 홍성(洪城)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홍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6)

관련 사건

  • · 홍성군 금마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6) 1899년 2월 3일 충청남도 홍성군(洪城郡) 금마면(金馬面) 인산리(仁山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홍성군 금마면 만세시위에 참여하여 일제로부터 고초를 겪었다. 1919년 4월 1일 홍성군 금마면 가산리(佳山里)에서 민영갑(閔泳甲) 등의 주도로 만세시위가 추진되었다. 이날은 가산리 이원교(李元交)의 집에서 연극 공연이 있었던 날로, 민영갑은 이재만(李載萬)과 협의하여 이원교의 집에서 연극을 관람하는 군중에게 독립만세를 부르도록 하자고 계획하였다. 이어 최중삼(崔仲三)·조한원(趙漢元) 등에게도 그 계획을 알리고 동의를 얻었다. 당일 오후 8시 연극이 공연되고 있을 때 조한원이 일어나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며, 주민들에게 만세운동의 취지를 설명하면서 동참하라고 호소하였다. 이때 이들의 호소에 공감한 관객 30여 명이 만세시위에 동참하여 ‘조선독립만세’를 연창하였다. 곧이어 일제 경찰이 출동하여 해산시키자, 이튿날 홍성 장터에 나아가 독립 만세를 불렀다. 4월 4일에는 금마면 내 각처에서 500여 명의 주민들이 모여 불을 피우고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날 홍성군에서는 홍성경찰서 부근 금마면과 그 주변 3개면의 20여 개소에서 주민들이 산 위에 올라가 불을 피우고 독립만세를 외쳤다고 한다. 이에 일제 경찰들이 지원나온 홍성 수비대 보병들과 함께 총기를 발포하여 10명이 사망하고 주도 인사 5명이 붙잡히면서 주민들은 해산하게 되었다. 현재 전하는 자료의 한계로 참여한 금마면 만세시위를 특정할 수 없다. 다만 이날의 만세운동에 적극적으로 참가하였다는 이유로 일제 경찰에 붙잡혀서 홍성경찰서로 연행되어 조사를 받고 즉결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4월 21일 홍성경찰서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전병무⋮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