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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화선

朴和先

1881. 9. 11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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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박화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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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홍성(洪城)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홍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1)

관련 사건

  • · 홍성군 금마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11) 1881년 9월 11일 충청남도 홍성군(洪城郡) 금마면(金馬面) 송강리(松江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1일 금마면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홍성군 금마면의 만세운동은 서울에서부터 시작된 독립만세운동의 움직임을 파악한 부평리(富平里)의 서당 훈장이었던 민영갑(閔泳甲)과 이재만(李載萬)의 계획에 김재홍(金在洪)·최중삼(崔仲三)·조재학(趙載學)·조한원(趙漢元)이 참여하면서 조직되었다. 민영갑·이재만 등은 4월 1일 가산리(佳山里) 이원교(李元交)의 집에 설치된 임시 연극 공연장에서 공연이 열리는 것을 이용하여 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계획을 결정하였다. 민영갑 등은 거사 당일 이원교의 자택에 설치된 임시 연극공연장에 관객으로 입장하여 만세운동을 시작할 기회를 탐색하였다. 이들은 연극이 공연 중인 오후 8시 자리에서 일어나 일제히 ‘조선독립만세’를 선창하고, 주민들에게 만세운동의 취지를 설명하며 동참하라고 호소하였다. 이들의 호소에 공감한 관객 수십 명이 만세시위에 동참하여 ‘조선독립만세’를 연창하였다. 이에 연극 공연장은 만세시위로 흥분된 분위기였으나, 곧이어 출동한 일제 경찰에 의해 강제 해산되었다. 4월 4일에는 홍성군 금마면과 그 주변 3개 면의 20여 개소에서 봉화시위가 일어났다. 홍성경찰서 관할 일제 경찰들이 총기를 발포하여 만세시위 참가자 10여 명이 사망하고 주도 인물 5명이 경찰에 붙잡혔다. 현재 전하는 자료의 한계로 참여한 금마면 만세시위를 특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금마면 만세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는 이유로 경찰에 붙잡혀 홍성경찰서에 구금되었다. 경찰의 조사 결과, 즉결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4월 23일 홍성경찰서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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