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박헌필

朴憲弼

1877. 3. 30 ~ 1956. 3. 18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박헌필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충남 홍성(洪城)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홍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1)

관련 사건

  • · 홍성군 금마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11) 1877년 3월 30일 충청남도 홍성군(洪城郡) 금마면(金馬面) 월암리(月岩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일어난 충남 홍성군 금마면 홍성시장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가 고초를 겪었다. 홍성군 금마면 만세시위는 부평리(富平里)의 민영갑(閔泳甲)과 이재만(李載萬)이 중심으로 계획하였다. 3월 1일 일어난 서울 만세시위 이후 전국적으로 만세운동이 전개되고 있음을 파악한 민영갑은 이재만과 협의한 후, 김재홍(金在洪)을 비롯한 동지들을 모아 만세운동을 추진하였다. 이들은 4월 1일 가산리(佳山里) 이원교(李元交)의 집에 설치된 임시 연극 공연장에서 마을 주민들을 대상으로 연극이 공연될 때를 기회로 만세운동을 시작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4월 1일 당일에 연극은 예정대로 공연되었고, 관객으로 참석한 민영갑·이재만 등은 연극이 한창 공연 중이던 오후 8시부터 ‘조선독립만세’를 선창하면서 관객으로 온 주민들에게 만세운동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였다. 이에 관객 수십 명이 호응하면서 연극 공연은 곧바로 만세시위로 전환되었다. 이날의 만세시위는 크게 확대되지는 않았기에 출동한 일제 경찰이 만세시위 참여자들을 붙잡지 않고 해산시키는 것으로 끝났다. 4월 4일에는 홍성군 금마면 내 각처에서 500여 명의 주민들이 모여 불을 피우고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날 홍성군에서는 홍성경찰서 부근 금마면과 그 주변 3개면의 20여 개소에서 주민들이 산 위에서 불을 피우고 독립만세를 외쳤다고 전해진다. 이에 지원 나온 홍성 수비대 보병들과 일제 경찰이 총을 쏘아 10명이 사망하고 시위를 주도 인사 5명이 붙잡히면서 주민들은 해산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일제 경찰에 붙잡혀서 홍성경찰서에 붙잡혀 조사를 받고 즉결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4월 23일 홍성경찰서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