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吳龍洙

吳洙

1922. 11. 18 ~ 2003. 3.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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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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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영동(永同)학생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북도 영동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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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대구사범학교 연구회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1922년 11월 18일 충청북도 영동군(永同郡) 매곡면(梅谷面) 광평리(廣坪里)에서 출생하였다. 일제가 강요하여 궁천용수(宮川龍洙)라는 창씨명을 사용하였다. 대구사범학교(大邱師範學校, 현 경북대학교 사범대학)에서 연구회를 조직하고 항일활동을 전개하였다. 1941년 1월 하순 대구사범학교 문예부 활동을 하면서 동급생인 강두안(姜斗安)·임병찬(林炳讚)·장세파(張世播)·안진강(安津江)·김영복(金榮宓)·최락철(崔洛哲)·윤덕섭(尹德燮)·이무영(李茂榮)과 함께 한국의 독립이 실현될 것을 전망하고, 독립에 대비해 각자가 선호하는 학문 분야에서 연구에 매진하여 자기 분야의 최고 권위자가 될 것을 기약하는 결의를 맺었다. 표면적으로는 학술 연구를 표방하면서도 실제로는 실력 양성을 바탕으로 하여 민족의식 앙양을 목적으로 하는 비밀결사 연구회(硏究會)를 결성하였다. 연구회는 문학부·역사부·공업부·정치경제부 등 모두 14부를 두고 회원의 학문 함양에 매진하였는데, 정치경제부 책임을 맡았다. 졸업 후에 각각 교사로 부임하게 되면 우수한 아동들에게 수재 교육을 실시하여 독립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기로 결의하였다. 또한 회원들은 현지에서의 활동 상황과 성과를 매월 1회 사무원에게 보고하고, 사무원은 다시 각지에서 보고된 상황을 취합하여 전체 회원에게 배부하기로 하였다. 1941년 3월 졸업 후 남성국민학교(南城國民學校)의 교사로 부임하여 “일본에서는 황국신민서사를 제창하지 않으면서 조선에서만 그런 서사를 제창하고 있는 것은 그들이 말하는 내선일체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한국인은 입으로는 이를 제창하더라도 마음속으로는 어디까지나 한국인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학생들과 학부형들에게 민족의식과 배일사상을 고취하는 등의 활동을 지속하였다. 그런데 1941년 7월 대구사범학교 8기생으로 충남 홍성군(洪城郡)에서 교사로 근무하던 정현(鄭鉉)이 갖고 있던 『반딧불』을 일제 관헌이 입수하면서, 대구사범학교 비밀 결사의 전모가 드러나게 되었다. 이로 인해 대구사범학교 관련자 300여 명과 함께 일제 경찰에 잡혔다. 이 일로 1941년 8월부터 2년 3월의 예심 기간을 거쳐, 1943년 11월 대전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 6월을 받았다. 옥고를 치르는 도중 광복을 맞이하고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수여하였다. ⋮김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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