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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재현

吳在賢

1909. 3. 21 ~ 1941. 1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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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오재현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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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무안(務安)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남도 무안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고려공산청년회. 조선학생사회과학연구회
  • · 서울청년회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1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10) 1909년 3월 21일 전라남도 무안군(務安郡) 삼향면(三鄕面) 유교리(柳橋里)에서 태어났다. 1920년대 후반 고려공산청년회(高麗共産靑年會)에 가입하고 활동하였다. 1928년 4월 15일 조선학생사회과학연구회(朝鮮學生社會科學硏究會) 총회에서 교양부장으로 선출되었고, 중앙기독청년학관·휘문고보·고학당의 학생운동 지도를 담당하였다. 비슷한 시기에 김복진(金復鎭)의 권유로 고려공산청년회에 가입하고 김종문(金鍾文)·염양배(廉養培)와 함께 야체이카를 조직하여 그 책임자가 되었다. 이 당시 중앙기독청년학관에 재학 중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1928년 8월에는 서울청년회에 가입하였다. 같은 달 서울 시내 학생들의 동맹휴교의 배후지도 혐의로 다른 사회과학연구회 인물들과 함께 경찰에 붙잡혀, 9월 24일 경성지방법원에 송치되었다. 이때 송치된 이후 계속 구금 상태에 있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1930년 11월 5일 조선공산당에 관련되었다는 이유로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 6월(미결구류일수 중 500일 본형 산입)을 받았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겪었고, 1931년 12월 22일 풀려났다. 이후 러시아로 이주하여 지내다가, 1940년 12월 29일 연해주 내무인민위원회 국가안전부에 붙잡혔고, 1941년 9월 15일 소련 극동전선 군법회의에서 총살형을 받았다. 그리고 그 해 12월 23일 하바로프스크에서 형 집행으로 사망하였다. 이후 1958년 2월 소련 최고재판소 군사협의회에서 1941년 극동전선 군법회의의 선고를 취소하고, 죄목을 없는 것으로 하였다. 또한 1997년 11월 24일 러시아의 「정치탄압 희생자 복권에 관한 법률」에 의하여 복권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박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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