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柳淵福

淵福

1890. 3. 7 ~ 1965. 6.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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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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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안동(安東)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안동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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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관련 사건

  • · 안동군 임동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1890년 3월 7일 경상북도 안동군(安東郡) 임동면(臨東面) 수곡동(水谷洞, 현 안동시 임동면 수곡리)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자는 성만(成萬)이고 호는 신와(愼窩)이며, 이명은 차기원(車淇源)이다. 안동의 근대 교육기관인 협동학교(協東學校)를 졸업한 뒤 1919년 3월 21일 안동군 임동면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이날의 만세운동은 유연성(柳淵成)·유동수(柳東洙)·유교희(柳敎熙)의 주도로 임동면 중평동(中平洞, 현 중평리) 챗거리장터인 편항시장(鞭巷市場)에서 일어났다. 여기에 협동학교를 운영하던 유동태(柳東泰)를 비롯하여 협동학교 졸업생과 학생들이 대거 참여하였다. 그 뒤 만주로 건너가 김영기(金榮基)로부터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어려운 실정을 듣고, 이를 지원할 목적으로 간도 독립단(獨立團) 발행의 공채(公債)를 가지고 고향 안동으로 돌아와 군자금 모집활동을 전개하였다. 이 활동으로 일본 경찰에 붙잡혔고, 1920년 12월 11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문서위조·사기·공갈미수죄로 징역 2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풀려난 이후 경북 영덕(盈德)에서 군자금 조달을 위해 손영학(孫永學)과 함께 1926년 2월 21일 영덕의 부호인 조규한(趙圭漢)을 찾아가 군자금 1만 원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이 일로 다시 일제 경찰에 붙잡혀 1926년 10월 14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이른바 강도미수죄로 징역 5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82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강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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