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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삼봉

柳三奉

1904. 9. 9 ~ 1934. 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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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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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남 원산(元山)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함경남도 원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덕원청년동맹
  • · 원산청년동맹
  • · 웅기그룹
  • · 항만적색노동조합

포상 정보

  • · 애국장(2010)

관련 사건

  • · 원산 학생만세운동 사건
  • · 항만적색노조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10) 1904년 9월 9일 함경남도 원산(元山) 명석동(銘石洞)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한자를 달리한 유삼봉(柳三奉)이다. 원산 지역 노동운동에 참여하였다. 1927년 11월 4일 원산에서 덕원청년동맹(德源靑年同盟) 상무집행위원으로 활동하였다. 이 무렵 원산청년회 주도권을 둘러싸고 무정부주의 계열과 분쟁이 일어나는 바람에 원산청년동맹 집행위원장 안몽룡(安夢龍) 등과 원산경찰서에 붙잡혔다가 풀려났다. 1928년 7월 4일 신간회(新幹會) 원산지회가 개최한 원산 11개 각 단체 협의회 준비위원 5인 중 1인으로 선정되었다. 1928년 7월 11일 『원산매일신문』 사설에서 한국 민족을 모독한 내용에 항의하는 백남우(百南祐)·전균(全均) 등 실행위원 7인 가운데 1인으로 선정되었다. 1929년 2월 원산청년동맹(元山靑年同盟) 간부로 원산쟁의비판연설회를 홍보하는 격문을 배포하여 붙잡혔다가, 2월 9일 풀려났다. 그 해 9월 21일 원산청년동맹회관에서 열린 원산청년동맹 집행위원회에서 사회를 맡았다. 1930년 1월 14일 광주학생운동에 호응하여 함흥고등보통학교에서 원산학생만세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원산청년동맹 간부 남상효(南相孝)·김종국(金鍾國) 등과 「전조선 전투적 학생에게 격(檄)함」이라는 제목의 격문 약 2,000장을 인쇄하여 배포하였다. 이 일로 1월 17일 원산경찰서에 붙잡혔다. 이 격문에서 “조선총독부의 노예적 교육정책에 반대하여 시위운동, 스트라이크를 일으키고, 학교 당국과 포악한 조선 총독의 정치를 폭로하는 연설회 등의 방법으로 정의와 자유를 위한 투쟁으로 일본제국주의의 군인과 싸워 검속된 학생들을 탈환하고 퇴학·정학 처분된 학생을 복교시키고 학생 자치권을 획득하고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하자”고 주장하였다. 1930년 8월 15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 등으로 징역 8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그 해 9월 29일 원심대로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겪었다. 1932년 4월 함경남도 덕원군(德源郡) 풍상리(豊上里)와 풍하리(豊下里) 궁민(窮民)들을 구제하기 위해 원산 각 단체가 연합하여 구제금을 모집하기로 하였을 때, 실행위원으로 참여하였다. 그 해 12월 10일 최동희(崔東熙)의 권유로 적색노동조합(赤色勞動組合) 웅기그룹 조직책임을 맡아 조직 확대에 힘을 쏟았다. 또한 원산노동연맹회(元山勞動聯盟會) 회원이자 『조선지광(朝鮮之光)』 웅기지사 기자로도 활동하였다. 1933년 1월 24일 항만적색노동조합(港灣赤色勞動組合) 활동을 하였다는 이유로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청진형무소에서 옥고를 겪던 중, 11월 22일 폐결핵으로 중태에 빠졌다. 11월 26일 병보석으로 풀려났으나, 병세가 악화되어 1934년 1월 11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전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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