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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종호

嚴鍾鎬

1907. 12. 20 ~ 1968. 1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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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엄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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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봉화(奉化)일본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봉화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전국일본노동조합전국협의회
  • · 일본공산당
  • · 노동계급사
  • · 조선공산당재건투쟁협의회 일본출판부

포상 정보

  • · 애족장(2008)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08) 1907년 12월 20일 경상북도 봉화군(奉化郡) 내성면(乃城面) 포저리(浦底里)에서 태어났다. 일제가 창씨개명을 강요하자 고야행작(高野幸作)을 썼다. 고향에서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한때 농사를 지었다. 1926년 4월 19일 봉화읍내에서 개최된 내성소년구락부(乃城少年俱樂部) 임시총회에서 사회를 보는 등 일찍부터 사회운동에 관심을 가졌다. 1928년 5월 노동을 하면서 고학(苦學)을 하려고 일본 도쿄(東京)로 갔다. 이 무렵 먼저 일본에 와있던 허경인(許景仁)·최두환(崔斗煥) 등과 가깝게 지내면서 사회주의 사상을 수용하고 일본 노동운동과 일본공산당 조직운동에 참가하였다. 1931년 6월 고토바시(江東橋) 직업소개소에서 허경인으로부터 일본노동조합전국협의회 가입을 권유받았으며, 곧 수락하여 토건노동조합 고토바시분회에 소속되었다. 이듬해 9월 최상준(崔相俊) 등과 회합하여 일본노동조합전국협의회 고토바시지구위원회 재건 및 도쿄지부 대회에 출석할 대표자 선임에 관한 사항, 조직의 확대 강화 등에 대해 토의하였다. 또한 이 기간 동안 메이데이, 반전데이 등 각종 기념일에 맞춰 일반노동자에게 유인물을 배포하는 등 적극적인 활동을 전개하였다. 1932년 1월 고토바시 가두(街頭) 야체이카 책임자 박희창(朴喜昌)으로부터 일본공산당 입당 제안을 받고 당원이 되었다. 그 해 1월 말부터 5월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박희창·박춘화(朴春和)·호리구치 츠네츠구(堀口恒次) 등과 야체이카 회의를 열어 당원의 획득, 활동 방침 등을 협의하였다. 한편 1932년 9월 이후 조선공산당(朝鮮共産黨) 재건운동을 전개하였으며, 노동계급사와 조선공산당재건투쟁협의회 일본출판부 등에서 활동하였다. 노동계급사(勞動階級社)는 무산자사(無産者社)의 취지를 계승한 것으로 출판물 발간을 통해 노농 대중의 의식을 고양시키고자 김치정(金致廷) 등에 의해 1932년 1월 조직되었다. 또한 5월에는 동지를 규합하고 이론적 통일을 기하기 위해 조선공산당재건투쟁협의회 일본출판부가 출범하였다. 같은 해 9월 중순부터 10월 10일 무렵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자택에서 김치정·허경인·김두정(金斗楨) 등과 함께 일본출판부의 세포회의를 진행하였다. 또한 9월 29일에는 노동계급사 전체대회에 출석해서 조직의 해체를 결의하고 내에서 재건운동을 전개할 것을 논의하였다. 한편 11월까지 윤기청(尹基靑)·허경인·윤상덕(尹商德) 등과 함께 전후 5차례에 걸쳐 사회운동사 강의를 듣는가 하면 야체이카원을 획득하는 방법, 일본출판부 해소 방법 등에 대한 토의를 진행하였다. 이와 같은 활동을 전개하던 중 일제 경찰에 붙잡혔고,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1933년 3월 4일 기소되어 도요다마(豊多摩)형무소 미결감에 수용되었다. 1935년 10월 13일 도쿄형사지방재판소에서 열린 예심 종결 판결에서 사상전향을 서약하고 보석으로 풀려났다. 1936년 3월 열린 도쿄형사지방재판소에서 징역 2년, 집행유예 5년을 받았다. 1936년 3월 제국갱신회(帝國更新會)에 가입하여 전향자로서 행세하였지만 박태을(朴台乙)·이창정(李昌鼎) 등 옛 동지들과 조직 재건에 힘썼다. 잡지 『동료(仲間)』를 일본인 활동가들과 함께 발간하였다. 1936년 3월에는 합법적 단독노동조합 활동을 통해 일본공산당과 일본노동조합전국협의회 재건의 기초를 마련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며, 두 차례에 걸쳐 전선통일간담회에 참가하였다. 또한 이운수(李雲洙)가 중심이 되어 재일 한국인 계몽을 위해 발행한 『조선신문(朝鮮新聞)』 편집에도 관계하였다. 그러나 『조선신문』 발간이 빌미가 되어 관련자들과 함께 1936년 9월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그 해 12월 7일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기소되어, 1937년 6월 4일 도쿄구류소에서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조형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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