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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상권

裵祥權

1915. 6. 28 ~ 1942. 6.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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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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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창원(昌原)일본방면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창원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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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북신상업학교 유학생회

포상 정보

  • · 애국장(1993)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3) 1915년 6월 28일 경상남도 창원군(昌原郡) 진해면(鎭海面) 석리(石里, 현 통합창원시 진해구 석동)에서 태어났다. 1931년 학업을 목적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고베시(神戶市)에 정착하였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어려워 연구소 사환, 백화점 요리사, 우체국 집배원, 세탁소 점원, 신문배달원 등의 일을 하며 후키아이상공실수학교(葺合商工實修學校)를 거쳐 기타카미상업학교(北神商業學校) 야간부 2학년에 편입하였다. 노동을 하며 학업에 매진하던 중 재일 동포들이 일본인에게 차별 당하는 현실을 보고, 일본이 겉으로는 민족 융화를 표방하고 있지만 안으로는 극단적인 민족 차별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이에 따라 1938년 7월 하순, 같은 학교의 재학생이었던 최창현(崔昌鉉)·조정규(趙正奎) 등에게 상하이(上海)와 하와이(Hawaii) 등 해외 독립운동단체의 활동 상황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민족의 독립을 위해서 항일 투쟁을 지도할 조직이 필요하다는 것을 역설하였다. 더불어 한국인 유학생을 결집하여 표면적으로는 친목을 내세우고 실제로는 독립운동을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유학생회를 결성하여 민족 정신과 독립 의식을 고취하고, 민족의 독립 달성에 노력할 것 등을 제의하였다. 1938년 10월 초순 고베에 거주하던 친형 배원상(裵元相)의 집에서 최창현·문규영(文奎泳) 등을 비롯해 기타카미상업학교 한국인 유학생 박영석(朴永碩)·이종만(李鐘晩) 등 14명과 함께 친목다과회를 열었다. 이때 한국인 학생이 회원이 되어 독립운동을 목적으로 하는 유학생회를 조직하였다. 스스로 회장이 되고 문예부장에 최창현, 회계부장에 조정규, 체육부장에 문규영을 지명 추천하였다. 또한 이 자리에서 국권을 침탈당하여 민족 차별 대우를 받고 있는 비참한 상황을 밝히고, 일제히 봉기하여 민족의 독립을 쟁취하자고 역설하였다. 이후에도 1939년 2월까지 10여 차례에 걸쳐 동지들과 함께 한민족의 참된 행복을 위하여, 해외 독립운동단체와의 연대 필요와 일제 궐기를 촉구하는 연설을 하였다. 그러던 중 1940년 3월 동지 8명과 함께 일제 경찰에 붙잡혀, 1940년 12월 16일 고베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3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옥중에서 가혹한 고문과 옥고의 여독으로 빈사 상태로 출옥했음에도 일본 경찰의 방해로 적절한 치료도 받지 못하고, 출옥 직후인 1942년 6월 17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최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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