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신
裵景信1882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이석조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족장(2013)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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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13) 경상북도 문경군(聞慶郡) 초곡면(草谷面) 초곡동[草谷洞, 현 문경시 문경읍 상초리(上草里)] 출신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1910년 당시 29세로 1882년생으로 추정된다. 이명으로는 배경신(裵敬信)이라고도 하였다. 1907년 7월 마중군(馬中軍)으로 불리던 이석조(李石兆)가 이끄는 의병부대에 들어가 활동하였다. 이석조는 경북 안동(安東) 출신으로 1896년 전기의병 당시 안동의병부대에서 유격장(遊擊將)으로 활동하였고, 그 후 1905년 을사늑약(乙巳勒約)과 1907년 고종(高宗) 강제 퇴위 등에 반대하여 후기의병으로 다시 일어났다. 의병 80여 명을 이끌고 안동·경주(慶州)·영천(永川)·청도(淸道) 등지에서 군자금 모집 활동에 주력하였다. 이 무렵 이석조 의병부대에 가담하였다. 1908년 1월 18일 밤 이석조의 지휘 아래 문정봉(文正鳳) 등 6명과 함께 청도군 대천면(大川面) 박동(朴洞) 이국원(李國源)의 집으로 가서 돈 200원을 징수하였다. 또한 1909년 (음)4월에는 김윤행(金允行) 등 동료 14명과 함께 경주군 강동면(江東面)에 사는 이진사(李進士)의 집으로 가서 돈 700원을 군자금으로 징수하였다. 이석조가 죽은 뒤에는 문정봉이 의병부대를 이끌었는데, 문정봉은 1908년 1월 이석조가 사망한 뒤 스스로 마중군을 자칭하였다. 문정봉은 경주군을 근거지로 하여 영천·청도 등 경북지역과 창녕·밀양 등 경남지역을 왕래하며 활동하였다. 1909년 12월 8일 활빈당 대장 방인준(方仁駿)·중군(中軍) 마기흥(馬冀興)·강재현(姜在見) 3인의 명의로 “1909년 12월 24일 정오까지 돈 100원을 경남 밀양면(密陽面) 영남루(嶺南樓)로 직접 가지고 오라”는 내용의 ‘포고문(佈告文)’을 작성하여 청도군 대천면의 이국원에게 발송하였다. 1909년 12월 24일 군자금을 모집하기 위하여 동지 김학수(金學守)와 함께 영남루로 나갔다가, 정보를 탐지하고 출동한 대구경찰서 순사대에게 붙잡혔다. 1910년 1월 19일 대구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강도로 징역 7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권영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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