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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경

方致京

1860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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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방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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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금산(錦山)의병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북도 금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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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조석우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족장(2009)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09) 전라북도 금산군(錦山郡, 현 충청남도 금산군) 출신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1909년 당시 50세로 1860년생으로 추정된다. 금산군 군북면(郡內面) 제동(濟洞)에 거주하였으며, 조석우(趙錫祐) 의병부대에 가담하여 활동하였다. 일제는 1907년 7월 헤이그 특사 파견을 빌미로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켰고, 같은 해 8월에는 한일신협약을 체결하고 대한제국의 군대까지 해산시켰다. 이후 해산된 군인들이 각 지역의 의병부대에 합세하여, 전국적으로 의병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이 무렵 충북 영동(永同)에서 조석우가 일으킨 의병부대에 가담하였다. 1909년 8월 23일 조석우 의병부대는 충북 영동의 영국사(寧國寺)에서 한국이 이전과 같은 온전한 독립국이 되도록 일본인 전부를 처단하고, 철도 정거장 등 일제의 침략 거점을 파괴할 것을 결의하였다. 또 격문을 퍼트려 의병을 더 모집할 것을 계획하였다. 그리고 8월 24일 영동군 양내면(陽內面)에서 군수품을 모집하고, 마을 사람 중 15세 이상 40세 이하의 장정은 모두 따르도록 설득하였다. 이와 같은 활동을 전개하던 중 동지들과 함께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09년 9월 23일 공주지방재판소 청주지부에서 이른바 내란죄로 유형(流刑) 2년을 받았다. 1910년 9월 5일 대사령으로 사면되어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이정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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