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慶煥
慶煥1902. 6. 8 ~ 1929. 11. 16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1) 1902년 6월 8일 경상북도 성주군(星州郡) 대가면(大家面) 용흥동(龍興洞)에서 이상우(李相雨)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성산(星山), 호는 포재(浦齎), 이명은 이희구(李熙龜)·이점포(李點甫)이다. 1923년 6월 일본으로 건너가 효고현(兵庫縣) 카자리마군(飾磨郡) 데가라무라(手柄村)에 거주하며 경제학을 공부한 것으로 전해진다. 일본 생활 중 항상 차별대우를 받아온 것에 불만을 갖고 있던 중 신문과 잡지 등에서 만주(滿洲)에 있는 한국인이 중국에 귀화하고 있는 사실과 한국인의 일본 도항(渡航)에 엄중한 제한을 받고 있는 일 등 민족적 차별에 더욱 분개하였다. 그러던 중 신문을 통해 일본의 천민단체인 수평사(水平社) 사원(社員)의 직소사건(直訴事件)의 범인에 대한 형벌이 비교적 가벼움을 알게 되었다. 이때부터 일왕(日王)에게 민족적 차별 철폐를 직접 호소하고자 결심하였다. 기회를 엿보다가 1928년 11월 24일 교토(京都)로 향하여 하룻밤을 머물고, 다음날 25일 오전 11시 일왕이 후시미모모야마(伏見桃山) 능(陵)에 참배하고 교토 황궁(皇宮)으로 가는 길에 기다리고 있다가 조선총독부 폐지 등을 주장하는 직소(直訴)운동을 벌이기로 하였다. 이에 교토시 시모쿄구(上京區) 가라쓰마루(烏丸)거리 가미주즈야초(上珠數屋町) 동본원사(東本願寺) 부근에서 일왕이 지나가자 오른손에 직소장(直訴狀)을 쥐고 경계선을 넘어 ‘직소(直訴)’를 외치며 일왕에게 다가갔으나 일제 경찰에게 제지당한 뒤 붙잡혔다. 조사 결과 직소의 내용은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를 폐지할 것, 내지(內地)(일본)와 같이 중의원(衆議院) 의원을 선거할 것, 내지인과 같이 징병(徵兵)할 것, 재외 한국인을 내지인과 같이 보호할 것, 기타 정치적 차별을 폐지할 것” 등이었다. 그리고 직소장 하단에 자신의 손가락을 베어 그 피로 손도장을 찍어 의분의 심정을 표현하였다. 같은 해 11월 27일 교토지방재판소에 송치되어 검사로부터 징역 6월을 구형받았다. 12월 10일 오전 10시 동 재판소에서 이른바 청원령(請願令)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이후 한국으로 귀국하였다가 일제의 통치에 울분을 참지 못하고 1929년 11월 16일 목을 매 자결하였다. 그리고 부인 성산 배씨(星山) (裵氏)도 남편을 따라 3일 만에 자결하여 부부가 함께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196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박경목⋮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