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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영

柳臣榮

1853. 6. 17 ~ 1919. 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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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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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안동(安東)문화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안동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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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1) 1853년 6월 17일 경상북도 안동군(安東郡) 풍남면(豊南面) 하회동(河回洞, 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에서 유도발(柳道發)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풍산(豊山)이며, 자는 경부(敬夫), 호는 하은(霞隱) 혹은 석간(石竿)이다. 이명으로 유경천(柳敬天)을 사용하였다. 유성룡(柳成龍)의 가문으로 11대손이다. 1895년 제천(堤川) 의병장 유인석(柳麟錫)의 휘하 의병부대에 참전하여 활동 중 조모상을 당해 귀향하였다. 이어 안동지역 의병부대에 참여하여 참모로 활약하였다고 전해진다. 1910년 경술국치를 당하자 부친 유도발은 “내가 지금 나이 80에 나라가 깨어지고 인군이 망하여 다른 나라의 포로가 되게 되었으니 욕됨이 심하다. 더구나 세신(世臣)의 후손이 아니겠느냐?”고 하며, 아들인 그의 만류를 뿌리치고 “종묘가 훼철되었으므로 일반 국민의 사당도 봉안할 수 없으니, 신주(神主)를 묻고 광복을 기다려라”고 당부한 채 11월 11일 단식을 시작하여 17일 만인 1910년 11월 28일 사망하였다. 이에 부친의 3년상을 마치자마자 애끓는 심정으로 1913년 속리산(俗離山)으로 들어가 은거하였다. 1919년 1월 고종이 친일파 윤덕영(尹德榮)·이완용(李完用) 등에 의해 독살당했다는 소문을 전해 듣고 격분하여 최후를 결심하였다. 우선 큰아들 유종묵(柳宗黙)을 서울로 보내 고종의 장례에 참석하게 하고, 자신의 마지막 날을 3월 3일 인산(因山)일로 잡았다. 큰아들을 서울에 보낸 채 3월 3일 이웃에 있는 가일마을의 외사촌형 권준희(權準羲)에게 장례를 부탁하고 독약을 먹고 자결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196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박경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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