申樂均
申均1899. 4. 13 ~ 1955. 4. 4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안성청년회
- · 경성사진사협회
- · 동아일보사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일장기말소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99년 4월 13일 경기도 안성(安城)에서 무관 출신 신택희(申宅熙)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평산(平山)이다. 1911년 안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인천공립상업학교에 진학하였으나, 중간에 경성관립공업학교 염직과로 전학하여 1918년 졸업하였다. 고향으로 돌아와 지물포를 운영하던 형을 도왔는데, 1919년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안성의 만세시위를 준비하였다. 금광면(金光面) 출신 유일준(兪日濬) 등 동지들과 함께 독립선언문을 등사하고 태극기를 제작하여 3월 29일 안성군청 앞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이후 일제의 검거를 피해 서울로 피신하여 매부 정욱진(鄭旭鎭)의 집에서 은거하였다. 이때 사진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진 매부로부터 사진의 중요성과 역사성을 알고 사진사가 되기로 결심하였다. 1920년 다시 안성으로 돌아와 안성청년회 간사로 활동하였다. 1922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東京)의 세이소쿠영어학교(正則英語學校)에서 1년, 도요대학(東洋大學) 문화학과에서 2년간 수학하였다. 1924년 도쿄사진전문학교(東京寫眞專門學校)에 입학하여 1927년 제2회로 졸업하였다. 같은 해 서울로 돌아와 중앙청년기독청년회(YMCA)학교 사진과 교사가 되어 근대 사진교육의 기초를 마련하였다. 1929년 2월부터 경성사진사협회 제3대와 제4대 회장을 맡았고, 1933년 경성사진학강습원 원장으로 부임하였다. 1934년 7월 동아일보 사진과장으로 입사하였다. 1936년 8월 9일 베를린 올림픽대회의 마라톤 경기에서 손기정(孫基禎) 선수가 우승하자 동아일보의 사진부장으로서, 일본 아사히신문(朝日新聞)사로부터 입수한 손기정 선수의 수상 장면을 게재하면서 가슴에 달린 일장기를 지운 사진을 8월 25일자에 게재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백운선(白雲善)·이상범(李象範)·서영호(徐永浩)·이길용(李吉用)·장용서(張龍瑞)·현진건(玄鎭建)·임병철(林炳喆)·최승만(崔承萬)·송덕수(宋德洙) 등의 동아일보 사원들과 함께 일제 경찰에 붙잡혀 40여 일에 걸쳐 혹독한 조사를 받았다. 이른바 ‘일장기말소사건’으로 동아일보를 퇴직하였고, 동아일보는 네 번째 무기정간을 당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전병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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