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규삼
白圭三1873 ~ 1917. 1. 7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동의회
- · 단지동맹
- · 권업회
포상 정보
- · 애국장(2008)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08) 함경북도 명천군(明川郡) 하고면(下古面)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873년생으로 추정된다. 호는 동산(東山)이며, 이명은 한자가 다른 백규삼(白奎三), 백규복(白圭復, 白奎復)을 사용하였다. 정식 교육을 받지는 않았으나 러시아, 중국어 회화와 해독이 가능해 중국과 러시아 지역을 무대로 폭넓게 활동하였다. 1908년 7월 안중근(安重根)이 러시아 연해주에서 의병부대를 결성할 때 장봉한(張鳳漢)·최병준(崔丙俊)·강만국(姜晩菊)·오하영(吳夏泳) 등과 함께 참가하여 지휘 업무를 맡았다. 같은 해 8월 안중근이 이끄는 2백여 명의 의병부대와 함께 국내 진입작전을 벌여 경원군(慶源郡) 신아산리(新阿山里, 현 경흥군 신아산리) 등지에서 일본군을 공격해 전과를 거두었다. 그러다가 회령(會寧) 영산(永山) 전투에서 패한 뒤 연해주지역으로 귀환하였다. 의병 재기가 어려워진 상황에서 1909년 초 연해주 연추(煙秋, 크라스키노 부근)에서 안중근·김기룡(金起龍) 등이 단지동맹(斷指同盟)을 결성할 때 참가했다. 이위종(李瑋鍾) 등이 결성한 동의회(同義會)에도 참가하여 서기로 활동하였다.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의 하얼빈의거가 일어나자, 유진률(俞鎭律)·엄인섭(嚴仁燮)·김하석(金河錫)·이종만(李鍾萬) 등과 협의하여 안중근유족구제회를 조직하여 유족을 위한 의연금을 모집하고 안중근 구명운동을 전개하였다. 블라디보스토크의 집에서 안중근의사가 단지(斷指)하고 결의한 동맹서와 혈서로 쓴 대한독립기, 그리고 안중근의 단지 등 유품과 중요 문서들을 간직하고 있었는데, 이곳을 찾아와 경건하게 참배하는 한인들의 행렬이 끊이지 않았다. 이후 훈춘(琿春)·연추(煙秋)·블라디보스토크 등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고 일본영사관과 헌병대 습격을 계획하는 한편 1911년 중국에서 신해혁명이 일어나자 이에 뜻을 같이하는 순치동제당(脣齒同濟黨)을 조직하고 발기인으로 참가하였다. 1911년 권업회(勸業會) 설립에 참가했으며, 동회의 연추 파견원으로 활동하였다. 또 홍범도(洪範圖) 독립군의 주축을 이루었던 전제익(全濟益)과 함께 훈춘과 연추지역의 민족운동을 주도해 갔다. 1912년 훈춘에 한인기독청년회가 설립될 때 교육과장을 맡았다. 기독청년회는 단지동맹의 동지였던 황병길(黃炳吉)이 회장을 맡았다. 1914년 훈춘의 신풍촌 종명학교 개교기념일에 축하회를 개최할 때 이동휘(李東輝)·황병길 등과 함께 참석하여 민족교육을 강조하는 등 훈춘지역 독립운동의 지도자로 활발한 활동을 펴나갔다. 그 일환으로 1915년 기독청년회 부회장, 1916년에는 회장을 맡으며 한인기독청년회를 이끌어 갔다. 이 무렵 이동휘·오병묵 등과 함께 블라디보스토크, 훈춘 등지에서 독립군 양성의 기반을 구축하는데 힘을 기울이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1917년 1월 7일 훈춘에서 병을 얻어 사망하였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장석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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