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根玉
根玉1884. 2. 16 ~ 1959. 12. 28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독립애국단
- · 조선민족대동단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관련 사건
- · 3
- · 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1) 1884년 2월 16일 강원도 양양군(襄陽郡) 토성면(土成面)(현 고양군 토성면) 운봉리(雲峰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토성면 교암리(橋岩里)·죽왕면(竹旺面) 오호리(五湖洞)의 각 게시판, 간성(杆城)가도(假道)와 인제(麟蹄)가도의 기로표(岐路標)에 「동포에게 충고함(忠告同胞)」이라는 제목으로 격서를 게재하였다. 격서의 내용은 “조선 민족은 파리강화회의에서 의정한 국제연맹의 원칙에 따라 자족자결의 의사를 표시하고, 조선 독립의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독립만세를 고창하고 시위운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같은 해 10월 2일 대한독립애국단(大韓獨立愛國團)의 강원도단(江原道團) 산하에 양양군단(襄陽郡團)이 결성되자 가입하였다. 대한독립애국단은 국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선전 및 통신 연락, 그리고 군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특히 연통부(聯通府)가 설치되지 못한 중부 이남지역에서 그 역할을 대신해 갔는데, 그 중에서도 철원(鐵原)을 중심으로 한 강원도 지역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영동지방에서는 특히 양양군단의 활동이 두드러졌다. 양양군단은 김영학(金永鶴)의 주도로 조직되어 10월 초순부터 단원을 확보하고 있었다. 이때 김형석(金亨錫)의 추천으로 대한독립애국단에 가입한 것이다. 또한 10월 14일 토성면 교암리시장에서 김형석을 만나 임시정부에 투신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할 것을 결의하였다. 그리고 김영학에게 중국 상하이(上海)로 가서 임시정부와 직접 연락하는 역할을 맡겠다고 자청하였다. 10월 하순 운봉리 자택에서 토성면 청년들인 문명섭(文命燮)·이석규(李錫圭),·김연수(金延洙)·김동훈(金東勳) 등에게 대한독립애국단 가입을 권유한 후, 함께 상하이로 건너갈 것을 제의하였다. 10월 30일 이들은 상하이로 가기 위해 철원의 강원도단을 거쳐 서울로 갔다. 서울에서 애국단 본부와 연락을 취했으나 여의치 않게 되자, 청년 단원들은 다시 양양으로 돌아가고 홀로 남게 되었다. 서울에 체재하던 중 박화진(朴華鎭)을 통해 조선민족대동단의 독립선언서와 그 외 선전물을 입수하게 되었다. 상하이로 건너가기 위한 여비와 임시정부에 제공할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기로 결심한 후, 「독립선언서」 등을 지참하여 다시 양양으로 돌아왔다. 1920년 2월 3일 건봉사(乾鳳寺)로 가서 승려 이운파(李雲坡)·탁능허(卓淩虛) 등을 만나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군자금 모집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그에 앞선 1920년 1월 대한독립애국단 강원도단 조직이 일제 경찰에 의해 파악되어 검거가 시작되면서 결국 붙잡혔다. 1920년 12월 23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4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황선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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