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古鏡
古鏡1882. 11. 20 ~ 1943. 1. 21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조선불교청년회
- · 조선불교유신회
포상 정보
- · 애족장(2011)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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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11) 1882년 11월 20일 경상남도 합천군(陜川郡) 가야면(伽倻面) 치인리(緇仁里)에서 태어났다. 1904년에 출가하여 해인사(海印寺)로 들어갔다. 1920년 12월 15일에 창립한 조선불교청년회(朝鮮佛敎靑年會)에 참여하였다. 조선불교청년회가 불교 혁신 운동을 위해 산하에 창립한 조선불교유신회(朝鮮佛敎維新會)에도 참여하였다. 1921년에 조선불교유신회가 벌인 「사찰령(寺刹令)」 철폐 운동을 주도하였다. 조선불교유신회는 조선총독부가 1911년에 공포한 「사찰령」을 철폐하라는 요구를 담은 건백서(建白書)를 승려 2,248명의 서명을 받아 조선총독부에 제출하였다. 1922년 3월 26일 조선불교유신회 총회 참석차 서울로 올라와 100여 명의 승려, 신도들과 함께 친일 행각으로 비판을 받던 수원(水原) 용주사(龍珠寺) 주지 강대련(姜大蓮)의 서울 사무소로 몰려갔다. 이후 강대련에게 북을 지게 한 다음, 거리로 내몬 ‘명고축출(鳴鼓逐出) 사건’을 일으켰다. 1922년 조선불교청년회의 상무간사(常務幹事)로 선임되었다. 1929년 1월 3일부터 5일까지 서울 수송동(壽松洞)에 있는 각황사(覺皇寺)에서 불교계 통일 운동의 일환인 조선불교선교양종승려대회(朝鮮佛敎禪敎兩宗僧侶大會)가 개최되었다. 이 대회는 1928년 3월 조선불교청년회의 발의로 준비되기 시작하였고, 먼저 발기대회가 1928년 11월 30일 각황사에서 개최되었다. 여기서 선출된 준비위원 31명이 다음날 권상로(權相老)를 위원장으로 하는 제1회 준비위원회를 개최하였다. 이때 준비위원의 한 사람으로 제헌부(制憲部)에 소속되어 활동하였다. 사전 준비를 끝낸 조선불교선교양종승려대회에는 참가를 희망한 본말사(本末寺) 사찰 대표 156명 중 107명의 대표가 참석하였다. 이때 각종 의안(議案)을 심사하는 제정위원(制定委員) 11명 중 한 사람으로 선출되었다.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가장 상징적인 자리인 교정(敎正)을 선출하는 전형위원으로도 활약하였다. 1933년 7월 7일에 선거를 통해 해인사 주지에 선출되었다. 본말사 주지 유권자 수 84표 중 65표를 얻었다. 1938년 1월 해인사는 불교전수강원(佛敎專修講院)을 법보학원(法寶學院)으로 개칭하였고 여기서 강의를 담당하는 강백(講伯)으로 활동하였다. 1942년 12월 24일 합천경찰서는 해인사로 몰려가 반일 사상을 고취하는 강의를 했다며 수색을 했을 때 방에서 『임진록(壬辰錄)』이 발견되었다. 합천경찰서는 10여 명이 넘는 해인사의 승려들을 잡아들였다. 이때 민동선(閔東宣) 등과 함께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들은 해인사에 모셔져 있던 사명대사(四溟大師)의 진영(眞影)을 압수하였고, 사명대사의 비석까지 파괴하였다. ‘해인사 사건’으로 합천경찰서에 잡혀가서 모진 고문으로 인해 중병을 얻었다. 1943년 1월 21일에 보석으로 풀려났지만 그날 저녁 합천경찰서 바로 옆 창성여관에서 입적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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