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선
吳昌善1895. 5. 9 ~ 1961. 7. 27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민국 임시정부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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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0) 1895년 5월 9일 경기도 진위군(振威郡, 현 평택시) 오성면(梧城面) 양교리(梁橋里)에서 태어났다. 1920년 경기도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군자금을 모집하기 위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1919년 만세운동 후 중국 상하이(上海)에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고향 친구이자 성공회(聖公會) 전도사인 이택화(李宅和)와 함께 독립운동 참여에 관해 협의하였다. 그러던 중 같은 해 10월 이택화와 함께 성공회 전도사 강희선(姜熙善)으로부터 인천(仁川)의 안구현(安九鉉)을 소개받고, 함께 활동하기로 합의하였다. 셋이 회합한 자리에서 안구현으로부터 임시정부의 사령서(辭令書)와 영수증, 권총과 실탄 등을 건네받았다. 1920년 2월 18일 안구현·이택화와 함께 완구용 권총을 휴대하고 진위군 오성면 숙성리(宿城里)의 부호(富豪) 김태연(金台淵)의 집으로 가서, 임시정부 재무총장(財務總長) 이시영(李始榮) 명의로 된 「군자금모금지령서(軍資金募金指令書)」를 제시하고 100원을 모집하였다. 같은 해 3월 10일에는 이택화와 함께 진위군 포승면(浦升面, 현 포승읍) 내기리(內基里)에 있는 이민화(李敏和)의 집에서, 안구현으로부터 받은 「군자금모금지령서」를 보이며 군자금 1,000원을 제공할 것을 요구하였다. 이후 그 해 3월 19일 혼자 다시 이민화의 집으로 가서 군자금 110원을 모금하였다. 이와 같이 활동하던 중 주변의 밀고로 안구현·이택화와 함께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이 일로 1920년 4월 28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가택 침입과 강도죄로 징역 5년을 받고, 경성감옥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변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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