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천수
安千壽1913. 11. 19 ~ 1963. 3.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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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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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913년 11월 19일 강원도 울진군(蔚珍郡, 현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箕城面) 정명리(正明里)에서 아버지 안항선(安恒善)과 어머니 장감호(張甘湖) 사이에서 1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순흥(順興)이며, 휘는 용관(鎔觀)·자는 국사(菊史)·호는 만오(晩晤)이다. 이명으로는 안용원(安鎔元)을 사용하였다. 강릉 최씨(江陵 崔氏)와 결혼하여 슬하에 3남 2녀를 두었다. 강원도 울진군 원남면(현 경북 울진군 매화면(梅花面))에서 매화공립보통학교(梅花公立普通學校)를 졸업하였다. 보통학교 졸업 후 고향에서 농업에 종사하던 중 『신소년(新少年)』, 『농민(農民)』, 『삼천리(三千里)』 등의 잡지를 읽으며 식민지 한국의 현실을 자각하면서 민족의식을 키웠다. 일왕 다이쇼(大正)가 죽은 지 9년이 되는 해인 1934년 12월 25일 일기장에 “오늘은 봉축일이다. 왜놈의 우두머리가 죽은 날로 왜놈들은 대정천황제라 칭하나 우리들은 언제까지나 저들에게 반항하여 볼 속셈이다”는 내용을 기록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일기장을 기성면 척산리(尺山里)의 안태열(安泰烈)에게 보여주며 민족의식을 공유하였다. 1934년 12월 27일에는 울진군 기성면 척산리에서 친구 황명칠(黃明七)·윤경복(尹敬福)·안태열(安泰烈) 등과 함께,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가 풀려난 안병극(安炳極)을 위로하는 모임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왜놈들은 조선을 점령하여 같은 나라 사람이라 칭하지만 조선인의 일본 도항을 제한하고 조선인, 일본인을 구별하는 것은 형편에 맞지 않고 실제로 왜놈은 조선인을 압박하여 조선인의 생활이 궁핍하여 굶어죽을 수밖에” 없다고 의견을 피력하였다. 그러므로 “일치단결하여 잃어버린 권리를 회복하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들은 지칠 때까지 조선독립운동을 하는 것이 필요하고 조선의 독립의 선결문제로 공산주의 운동도 함께 행하여져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독립운동의 구체적인 방안으로 비밀결사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일제의 민족분열정책으로 한국인의 단결력이 약해졌기에 독립과 공산주의 사회의 실현이 어려우므로 독립운동을 위한 항일비밀결사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참석한 친구들이 동의하자 먼저 4명이 비밀결사를 조직하여 차례로 동지를 규합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또 독립과 공산주의 사회 실현을 목적으로 하는 비밀결사를 조직하기로 결의하였다. 조직 결성을 위한 준비를 진행하던 중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이 일로 1935년 9월 13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불경죄의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지만, 같은 해 10월 16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겪었다. 1936년 10월 16일 만기로 풀려났고 1940년 무렵 만주로 건너가 독립운동에 참여하다가 귀국하였다. 광복 이후에는 건국준비위원회(建國準備委員會) 울진군지부의 사찰과장(査察課長)으로 활동하였다. 1963년 3월 20일 서거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추모비에는 1962년 9월 15일이 사망일로 기록되어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허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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