安承樂
安承1913. 4. 1 ~ 1943. 8. 6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적위대
- · 적색노동조합
포상 정보
- · 애족장(2008)
관련 사건
- · 적위대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08) 1913년 4월 1일 경상남도 창원군(昌原郡) 상남면(上南面) 퇴촌리(退村里; 현 창원시 퇴촌동)의 순흥(順興) 안씨 세거지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순흥이고 초명(初名)은 승렬(承烈)이며, 자(字)는 석준(石準), 호(號)는 서헌(曙軒)이다. 이명으로 이주호(李周鎬)·배갑술(裵甲述)·안각(安角)·이민(李閔)·안용섭(安龍燮)·안갑술(安甲述)·안창도(安昌道), 안전(安田)·안청(安淸) 등을 사용하였다. 창원의 순흥 안씨 친족 중 상당수가 개화운동과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 증조부 안정석(安貞錫)은 1908년 사립 숭광학교(崇廣學校)를 세워 근대 교육운동을 하였으며, 부친 안병헌(安秉鉉, 安浚)은 조선청년총동맹 중앙집행위원, 고려공산동맹 경남책임자 등 초기 사회주의운동가로 활동하였다. 부친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사회주의에 관심을 두었다. 1928년 고향에서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와 경신학교(儆新學校)에 입학하였다. 경신학교 재학 중 사회주의자들과 교유하고 사회주의 서적을 탐독하였으나 병을 얻어 잠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1930년 9월 다시 서울로 올라가 중앙기독청년회 학교 제1부에 입학하였다가 사상사건에 연루되어 퇴학당하였다. 퇴학당한 사건과 관련 여부는 알 수 없으나 1932년 4월 10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여러 차례 서울과 고향을 오가다가 1932년 가을 서울로 올라와 아버지와 알고 지내던 강귀남(姜貴南)의 집에서 지내면서 안종서(安鍾瑞)·강수구(姜壽求) 등으로부터 사회주의 이론에 대해 배웠다. 강수구 등이 붙잡힌 후 거주를 옮겨 도피하면서 충청 지역의 노동조합원들과 연락하고 사회주의 서적을 보내는 등 적색노동조합 조직 활동을 하다가, 1933년 6월 적위대(赤衛隊) 재건으로 경찰의 추적을 받아 붙잡혔다. 그러나 조직 결성 등을 일체 부정하여 강귀남과 함께 풀려났다. 1933년 10월부터 약 한 달간 이재유(李載裕)를 만나고, 1934년 4~5월에는 권영태를 만나 사회주의 운동에 대해 토론하였다. 이재유 그룹, 권영태 그룹과의 관계가 어떠하였는지는 분명치 않다. 이후 1935년 말까지 김희성(金熙星)·안임균(安任均)·이주몽(李柱夢)·안창대(安昌大) 등과 협의하여 공장에 취직해 활동하면서 동대문과 용산을 중심으로 적색노동조합을 조직하기 위한 활동을 하였다. 1935년 3월경 백명흠(白明欽)에게 활동 자금 조달을 부탁하여 같은 해 4월과 6월 각각 700원과 300원의 자금을 제공받았다. 이 자금으로 서울 종로구(鐘路區)에 중앙의원을 운영하면서 스스로 회계와 수금을 담당하였다. 1935년 10월 적색노동조합 결성을 위해 준비하던 중 붙잡혔고, 그해 12월 16일 경성지방법원 검사국으로 송치되어 12월 26일 예심에 회부되었다. 19개월 간의 재판기간을 거쳐, 1937년 7월 10일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3년(미결구류일수 중 250일 본형 산입)을 받았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겪다가 1939년 11월 3일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박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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