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달득
安達得1903. 5. 19 ~ 1928. 11. 2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용진단
- · 진우연맹
- · 파괴단
포상 정보
- · 애족장(2007)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07) 1903년 5월 19일 경상북도 대구(大邱)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적파(赤波)·안달덕(安達德)을 사용하였다. 1925년 대구에서 창립된 용진단(勇進團)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1925년 1월 대구에서 창립된 용진단의 사교부단원으로 창립과 운영상 중심 인물로 활동하였다. 같은 해 1월 10일 대구에서 보천교 주최로 시국대동단(時局大同團)이 일본과의 융화를 주장하는 강연회를 개최하였을 때, 경찰의 엄중한 경계도 불구하고 강연자 채기두(蔡基斗)를 철권(鐵拳)으로 제재하여 강연을 방해하는 단독투쟁도 감행하였다. 1925년 6월에는 ‘적기사건’과 연관되어 수감되기도 하였다. 1925년 9월 대구노동공제회(大邱勞動共濟會) 회관에서 진리와 우정으로 맺어진 혈맹을 의미하는 진우연맹이 조직되어 무정부주의 연구를 연맹의 목적으로 삼았다. 합법적인 학술연구단체를 표방하며 출범한 진우연맹은 이후 대구·경북 지역 20대 청년들의 사회운동단체로 활동범위를 넓혀나갔다. 한편 일본의 무정부주의 인사들과도 교류하였는데, 흑우회(黑友會) 재건을 도모하던 김정근(金正根), 흑색청년연맹(黑色靑年聯盟)에서 활동하던 구리하라(栗原一男) 등과 긴밀한 관계를 구축하였다. 또한 이치가야형무소(市谷刑務所)에 수감 중인 박열(朴烈)과 가네코 후미코(金子文子)를 위한 의연금을 모금하는 등 국제적 무정부주의 연대활동을 전개하였다. 사실상 진우연맹은 제국주의 질서를 부정하는 비밀결사로서 세력을 확대하고 있었는데, 이 조직에서 핵심 인사로 활동하였다. 진우연맹은 일본제국주의를 붕괴시킬 구체적 방안으로써 ‘파괴단(破壞團)’을 조직하였다. 이를 통해 대구 지역 내 도청·경찰서·법원 등 주요 관공서를 파괴하고, 도지사·경찰부장 등 고관을 암살하겠다는 것이 연맹의 계획이었다. 이들은 상징적으로 일본인 상업 중심지인 모토마치(元町) 1정목의 점포를 파괴할 것도 계획하였다. 1926년 4월 조직을 정비하며 구체적 의거를 계획하던 중, 7월경 방한상(方漢相)·신재모(辛宰模)·김정근·구리하라 등과 함께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일제 경찰에 의해 2개월간이나 조사를 받은 뒤, 신재모·방한상·서학이(徐學伊)·김동석(金東碩)·정명준(鄭命俊)·마명(馬鳴)·우해운(禹海龍)·서동성(徐東星)·하종진·구리하라·김정근·가스모토(掠本運雄) 등 12명과 함께 1926년 8월에 재판에 회부되었다. 이들은 1927년 2월 옥중단식투쟁을 벌이는 한편, 강력한 법정투쟁을 전개하였다. 1927년 7월 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정명준과 함께 징역 2년을 받았으며, 함께 재판받았던 방한상·신재모·김정근·서학이는 각 징역 5년, 구리하라·가스모토·서동성·마명·우해운은 각 징역 3년, 하종진·김동석은 각 징역 2년에 집행유예 4년을 받았다. 이후 공주형무소에서 옥고를 겪던 중, 1928년 11월 2일 음독 자결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7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황선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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