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瑞龍
瑞龍1919. 4. 26 ~ 1945. 3. 25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한국광복군 제2지대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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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0) 1919년 4월 26일 황해도 서흥군(瑞興郡) 소사면(所沙面) 농운리(弄雲里)에서 태어났다. 1941년 한국광복군에 입대하였고, 1942년부터 산시성(山西省)·허난성(河南省) 일대에 파견되어 초모활동과 적후방 공작 등을 수행하였다. 1941년 1월 만주국의 수도인 신경(新京)에서 정영후(鄭英厚)·정윤희(鄭允熙)를 만나 이들과 함께 시안(西安)으로 가서 광복군에 입대하였다. 자료상으로 나타나지는 않지만, 시안에서 한국청년훈련반(韓國靑年訓練班)에 들어가 교육과 훈련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한국청년훈련반은 시안을 거점으로 초모활동을 전개하던 한국청년전지공작대(韓國靑年戰地工作隊)에서 설립한 것으로, 일본군 점령 지역에서 모집해 온 한인 청년들을 수용하여 교육과 군사 훈련을 실시하던 교육 기관이었다. 1942년부터 광복군 제2지대 대원으로 일본군 점령지역인 산시성 지역에 파견되어 적후방 공작을 수행하였다. 광복군 제2지대에서는 김천성(金天成) 등 많은 대원을 일본군 점령지역인 산시성·허난성(河南省) 일대에 파견하여, 그곳에 이주해 있던 한인 청년들을 병력으로 모집하는 초모활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일본군의 군용 철도와 군사 시설을 파괴하는 등 각종 적후 방공작을 펼치고 있었다. 이러한 활동에 참여하였으며, 1944년 3월 김천성 등과 산시성 타이위안(太原)에서 전일묵(田一默)을 비롯하여 20여 명의 한인 청년을 초모하는 성과를 올렸다. 적후방 공작 중 산시성 타이위안에서 일본군 헌병대에 체포되었다. 체포된 시기와 계기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1943년 3월 타이위안에서 활동하던 중 중국인의 밀고로 김천성·정태희(鄭泰熙)와 함께 일본군 타이위안헌병대에 붙잡혔고, 1944년 12월 산시성 주둔 일본군 제3051부대 임시군법회의에서 재판을 받았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1943년 7월 27일 산시성 타이구(太谷)에서 김천성·정윤희·권혁상(權赫祥)·정태희·정기주(鄭基周)·차영철(車英哲) 등 제2지대 대원들과 함께 군수 물자를 실은 군용 열차를 습격해 폭파하고, 일본군과 전투를 벌이다 붙잡혔다는 것이다. 거사에 참여하였던 김천성·이해순(李海淳)·정윤희는 사형당하였고, 권혁상·정태희·정기주 등과 함께 징역 3~8년을 받았다는 회고가 있다. 시기와 계기는 단정할 수 없지만, 광복군 제2지대 대원으로 산시성 일대에서 적후방 공작을 전개하던 중 1943년 일본군 헌병대에 붙잡혀 옥고를 겪다가, 1945년 3월 25일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82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한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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