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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희영

吳熙英

1924. 4. 23 ~ 1969. 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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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오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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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지린성(吉林省)광복군

지도 위치

광역 지역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중국 지린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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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
  • · 한국광복군
  • · 한국독립당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924년 4월 23일 중국 지린성(吉林省) 어무현(額穆縣)에서 아버지 오광선(吳光鮮)과 어머니 정현숙(鄭賢淑, 이명 정정산)의 3남매 중 첫째 딸로 태어났다. 본적은 경기도 용인군(龍仁郡) 원삼면(遠三面) 죽릉리(竹陵里) 어현동(於峴洞)이다. 여동생 희옥과 막내 남동생이 있다. 할아버지 오인수(吳寅秀)는 18세부터 명포수로 이름을 떨쳤다. 1905년부터 300명 규모의 정철화(鄭哲和) 의병부대에서 중군장으로 활약하며, 죽산(竹山)·안성(安城)·여주(驪州) 등지에서 일제 헌병대와 경찰관주재소를 습격하고 경찰 수십 명을 사살하였다. 1907년 8월 일본군 수비대와 맞붙은 안성 매봉재 전투에서 패한 뒤 야밤에 집을 찾았다가 일진회 회장 송병준(宋秉畯)의 아들 송종헌(宋鐘憲)이 이끄는 토벌대와 일제 경찰에게 붙잡혀 서대문형무소에서 8년간 옥고를 겪었다. 아버지 오광선은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를 졸업하고,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 제1대대 제1중대장과 신흥무관학교 교관으로 복무하였다. 그 뒤 서로군정서 별동대장과 경비대장, 동북항일 한중연합군 독립대대장, 뤄양(洛陽) 중앙군관학교 교관을 역임하였고, 해방 전후에는 광복군 국내지대 사령관으로 근무하였다. 1915년 가을 아버지가 21세의 나이로 압록강을 건너 중국으로 망명한 후 가족들은 지린성 류허현(柳河縣)으로 들어가 산비탈을 경작하며 어렵게 생활하였다. 가끔 아버지가 독립군을 체포하려는 일제의 감시 속에 몰래 산속에서 아내를 불러 본 후에 돌아갔지만 자녀들은 만나보지 못하였다. 아버지를 만나고 온 어머니에게 “아버지가 오셨다 가셨다”라는 말로 어렴풋이 아버지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다. 또 마적들이 들이닥쳐 행패를 부리면 어머니가 쌀을 퍼주어 돌려보냈고, 일본 군경이 오면 한밤중이라도 산으로 피신해야만 하였다. 어머니는 어린 아이들을 업고 이불을 가지고 산으로 가서 숨어 있다가 “왜놈들 갔다”는 소리가 들리면 산에서 내려오곤 하였다. 조소앙(趙素昻)의 증언에 의하면 성격이 남자같이 활달하였고, 어린 나이에도 중국말을 썩 잘하였다고 한다. 이후 충칭(重慶)에서 중학교 3학년 재학 중 한국광복군(韓國光復軍)에 자원 입대하였다. 광복군에 들어가면 혹시 아버지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도 그 이유 중 하나였다.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韓國光復陣線靑年工作隊)에 입대하였다가 1940년 한국광복군이 창설되자 오광심(吳光心)·김효숙(金孝淑) 등과 함께 여군으로 입대하여 광복군 제3지대 간부로 활동하였다. 1942년 4월 광복군 징모처 제6분처가 제3지대장 김학규(金學奎)를 중심으로 편성되자, 오광심·신송식(申松植)·서파(徐波)·김광산(金光山)·신규섭(申奎燮)·지복영(池復榮) 등과 함께 간부로 활약하였다. 이들은 본래 산둥반도(山東半島)에 근거를 정하고 징모·선전활동을 전개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그렇지만 적 점령 지구 통과 문제로 안후이성(安徽省) 푸양(阜陽)에 정착하여 활동하였다. 당시 푸양은 중국군 제5전구 지역으로 일본군의 포위망 속에 위치하고 있는 최전선이었다. 이에 따라 상대적으로 적 점령지구에 대한 초모 활동을 전개하기에 유리한 측면도 있었다. 이들은 푸양을 거점으로 하여 주로 쉬저우(徐州)·구이더(歸德)·화이양(淮陽)·지난(濟南)·칭다오(靑島) 등지에서 공작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 시기에 평남 안주 출신의 신송식(申松植, 이명 진경성(陳敬誠))과 결혼하였다. 신송식은 1933년 8월 광둥(廣東) 정치군사학교를 제4기로 졸업하고, 1936년 8월에는 중앙육군군관학교 제4분교를 제13기로 졸업하였다. 1937년 4월, 중앙포병 제51단에 소위로 임명 배속되어 항일전쟁에 참전하였다. 이후 1941년 민족혁명단원으로 조선의용대(朝鮮義勇隊)에 가입하여 한국광복군 제1지대에 편성되었다가 제3지대로 전입되어 시안(西安)에서 활동할 때 결혼하였다. 1944년 11월에는 푸양에서 중국 중앙육군군관학교 제10분교 간부훈련반에 병설된 한국광복군훈련반(韓國光復軍訓練班, 약칭 한광반)에서 군사교육 훈련을 마친 한광반 1기 졸업생 등 50여 명과 함께 남편 신송식의 인솔 하에 광복군총사령부가 있는 충칭으로 향하였다. 1945년 1월 30일 충칭에 도착하여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에 가입하였으며, 광복을 맞이할 때까지 활동하였다. 환국 이후 특별한 직업을 갖지 못하고 어렵게 생활하였다. 1947년 6월 귀국하여 한국광복청년회 전위대장을 지낸 남편 신송식도 타이완(臺灣)으로 건너가 국민당 정부 국방부에서 활동한 뒤 1950년 2월 다시 귀국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박성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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