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문근
宋文根1895. 9. 19 ~ 1963. 11. 25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성주군 성주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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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95년 9월 19일 경상북도 성주군(星州郡) 초전면(草田面) 고산동(高山洞)에서 송준복(宋浚福)의 유복자로 태어났다. 본관은 야성(冶城)이며, 자는 회부(會夫)이다. 일찍이 삼종숙(三從叔) 공산(恭山) 송준필(宋浚弼)의 문하에서 한학을 수학하였으나 가세가 곤란하여 중도에 그만두고 집에서 주경야독으로 공부에 매진하였다. 1919년 성주군 성주면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1919년 만세운동 이후 유림단의 독립청원 운동을 주도했던 송준필을 후원하였다. 유림단의 독립청원서를 휴대하고 김창숙(金昌淑)이 상하이(上海)로 떠난 뒤, 삼종숙 송준필, 사종형 송회근(宋晦根), 그리고 족친 송규선(宋圭善)·송우선(宋祐善)·송수근(宋壽根) 등과 함께 성주군 초전면 고산리(高山里)에 있는 백세각(百世閣)에서 송준필이 제작한 국내통고문을 각처로 배포하는 등 4월 2일 성주읍 장날 만세시위를 준비하였다. 그리고 이 소식을 듣게 된 성주면(星州面) 용산동(龍山洞, 현 성주읍 용산리)의 김희규(金熙奎)가 대가면(大家面) 옥화리(玉花里)의 교회 조사(助事) 유진성(兪鎭成), 초전면(草田面) 동포동(東浦洞, 현 동포리)의 기독교인 오임오(吳任吾) 등을 규합하여 4월 2일 만세시위에 함께 참여하기로 하였다. 4월 2일 오후 1시 성주면 경산동(京山洞, 현 성주읍 경산리) 관제묘(關帝廟) 뒷산에서 기독교도들이 먼저 태극기를 들고 성주읍 시장을 향하여 나아가면서 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이에 호응하여 시장 중앙에 모였던 유림 측의 일원으로 송우선(宋祐善)·송회근(宋晦根)의 주도 하에 송수근·송훈익(宋勳翼)·송규선·이봉희(李鳳熙) 등과 함께 태극기를 손에 들고 만세를 불렀다. 이날 만세시위에서 일제 경찰의 발포로 이태희(李兌熙)와 성명 미상의 2명이 현장에서 총을 맞고 사망하였으며, 이봉희(李鳳熙) 등 7명이 부상을 입었다. 일제 경찰이 주도 인물 체포에 나선 후, 붙잡혀 모진 조사를 거친 후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되었다. 1919년 5월 20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10월을 받자 불복하여 항소를 제기하였다. 그러나 같은 해 8월 21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권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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