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원
朴泰元1890. 12. 23 ~ 1924. 4. 26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5)
관련 사건
- · 예천군 용문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5) 1890년 12월 23일 경상북도 예천군(醴泉郡) 용문면(龍門面) 상금곡동(上金谷洞)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함양(咸陽)이며, 유학을 공부하였다. 1919년 4월 3일 예천군 용문면 상금곡동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4월 3일 예천군 용문면 면사무소 앞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은 권석인(權錫寅)을 비롯한 예천 권씨(醴泉權氏)가 주도하여 전개되었다. 권석인은 고종 장례식에 참가하기 위하여 2월 29일 서울에 갔다가 만세운동을 현장에서 보았다. 권석인은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고향에 돌아와 같은 마을에 사는 재종형(再從兄) 권석호(權錫虎)를 찾아가 거사를 계획하였다. 3월 12일 예천 장날을 거사일로 정하고 독립선언서를 여러 장 등사하여 각 동리에 배포하면서 사람들을 규합하기 시작하였다. 이 과정에서 일제 경찰의 주시를 받자 날짜를 다음 장날인 3월 17일로 연기하게 되었다. 그러나 17일 거사 계획도 일제 경찰에게 포착되면서 결국 성사되지 못하였다. 용문면의 만세운동 날짜가 미루어지는 중에 호명면(虎銘面) 원곡동(原谷洞)에서 먼저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권석인 등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판단하고, 4월 3일 저녁 비밀리에 거사 계획을 알리고 실행에 옮겼다. 밤 9시경 권석인·권석호·권세원(權世遠)·권석효(權錫孝) 등이 주도하여 죽림동(竹林洞)에서 만세운동이 시작되었다. 1시간 뒤인 10시쯤에는 면사무소가 있는 상금곡동으로 확대되었다. 금곡동에서 많은 사람이 합류하였으며, 이때 참여해 주도적으로 활동하였다. 권석인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독립만세’를 선창하자, 상금곡동에 모인 사람들과 함께 만세를 외치면서 면사무소 앞길을 따라 장터까지 행진하였다. 수백 명의 사람이 참여한 만세운동은 자정이 가까운 시간까지 이어졌다. 만세운동 소식에 출동한 일제 헌병은 총검으로 위협하며 무력으로 군중들을 해산시키고 만세운동 주도자를 붙잡았다. 이때 권석인 등 16명과 함께 붙잡혔다. 이 일로 1919년 4월 8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4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홍종욱⋮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