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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충서

朴忠緖

1898. 8. 24 ~ 1934. 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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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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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김포(金浦)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김포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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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김포군 양촌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98년 8월 24일 경기도 김포군(金浦郡) 양촌면(陽村面) 누산리(樓山里)에서 서당을 운영하던 박승혁(朴勝赫)의 아들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京城第一高等普通學校, 현 경기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었다. 그해 3월 1일 서울에서 만세운동이 전개되자 탑골공원의 독립선언식에 참여하고, 종로·대한문·남대문을 거쳐 각국 영사관 앞을 순회하며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또한 3월 5일에는 남대문 정거장에서 군중과 함께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이후 일제 경찰이 부친 박승혁에게 강권하여 귀향시키도록 하자, 고향으로 돌아와 삼촌 박승만(朴勝萬)·박승각(朴勝珏)과 친지인 안성환(安聖煥)·전태순(全泰順) 등과 협의하여 고향 김포에서 만세운동을 일으킬 계획을 세웠다. 3월 19일 안성환의 집에서 주도 인물들과 만나 3월 23일 양촌면 오라리[(吾羅里) 또는 양곡리(陽谷里)] 장날에 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정하고, 비분강개한 내용이 담긴 격문과 “독립 만세를 부르기 위하여 모이라.”는 취지의 통문 수십 통을 작성하였다. 이후 외가 친척인 정억만(鄭億萬)·오인환(吳仁煥) 등의 동의를 얻은 뒤 7명이 각각 책임 부서를 정하고, 작성한 격문과 통문을 양촌면 각지에 배포하여 면민들로 하여금 만세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을 촉구하였다. 또한 거사 전 주재소의 통신을 차단하기 위하여 전화선을 절단하고자 하였으나, 사전에 주재소 일제 경찰에 의해 발각되어 실패하였다. 3월 23일 오후 2시 오라리 장터에 태극기를 지니고 가서 수백 명 군중의 선두에서 독립 만세를 선창하고 시장을 행진하는 등 만세시위 운동을 주도하였다. 그 과정에서 박승각·박승만·정억만·안성환·전태순·오인환과 함께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시위 군중은 체포된 인사들에 대한 석방을 요구하며 주재소를 포위하고 격렬한 시위를 벌이다 3월 24일 오전 7시 해산하였다. 1919년 5월 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는데 그해 6월 26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원판결은 취소되었으나 형량은 동일한 2년이 되었다. 다시 무죄를 주장하며 상고하였으나, 같은 해 9월 4일 고등법원에서 최종 기각되어 서대문감옥에서 옥고를 겪은 후, 1921년 9월 12일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애족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조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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