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하
辛東夏1923. 9. 30 ~ 1984. 10. 16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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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923년 9월 30일 경상북도 경주군(慶州郡) 강동면(江東面) 모서리(毛西里)에서 태어났다. 일제가 창씨개명을 강요하자 중광동하(重光東夏)를 썼다. 일찍이 일본으로 건너가 고베시(神戶市)에서 국민학교를 졸업하였다. 이후 규슈(九州)·도쿄(東京) 등지를 전전하면서 신문배달, 자동차 운전조수 등으로 생활하였으며, 1942년 1월 다시 고베로 돌아와 직공(職工)이 되었다. 일본의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어렵게 생활하던 과정에서 일제의 민족차별을 경험하면서 점차 민족의식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1941년 12월 태평양전쟁이 일어나자, “당면한 전쟁에서 장차 일본은 미국이나 영국 등 강대국에 대하여 결국 패전할 것이며 그때야말로 조선 민중이 봉기하여 독립을 달성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판단하였다. 이에 자신의 당면 활동은 고베시에 있는 한국인 청년들을 계몽하여 이들을 결집시키는 데 있다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판단에 기초하여 1942년 2월부터 고베시에서 운전조수·차장·신문배달부·직공·학생 등을 대상으로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 결과 김두갑(金斗甲)·이종철(李鍾哲)·강석봉(康錫鳳)·홍원도식(洪原道植)·풍천남렬(豊川南烈)·김여용훈(金汝容薰) 등을 동지로 규합하였다. 그리고 이들과 함께 “일시귀국증명서 문제, 조선문화와 조선정신의 말살 문제, 일제 식민통치의 착취와 압박, 간디(Mahatma) (Gandhi)를 비롯한 인도(印度) 독립투사의 사례, 지원병제도 및 징병제도의 본질” 등을 논제로 삼아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려고 노력하였다. 또한 태평양전쟁 과정에서 머지않아 미국 비행기가 일본 본토를 공습하여 결국 일본이 패망할 것이니, 이 혼란기에 한국 민중이 봉기하여 독립을 완성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이 과정에서 특히 김두갑·이종철·강석봉 등과 사상적으로 공감대가 크고 번번이 독립운동에 헌신할 열의를 토로하여, 결국 1942년 3월 말 함께 그룹을 결성하였다. 이와 같이 활동하다가 1943년 3월 31일 동지들과 함께 일제 경찰에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당시 일본 당국은 이들을 ‘재고베(在神戶) 조선인민족주의그룹’이라고 불렀다. 1943년 10월 4일 고베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 집행유예 5년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변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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